[사설] 뜨거운 가슴과 차분한 머리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분단 55년 만에 실현된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은 '파격(破格)' 으로 시작됐다.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을 북한의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이 공항의 트랩 밑까지 직접 나와 마중하는가 하면 인민군 의장대의 사열과 분열까지 거행됐다.

공항은 말할 것도 없고 영빈관까지의 연변에도 수많은 환영 인파가 나와 북한이 그야말로 온 힘을 기울여 金대통령을 '최고의 예우' 로 환대하는 모습을 보였다.

우리는 이와 같은 金위원장의 이례적인 환대나 북한 주민의 환영이 이번 회담에 거는 북한의 기대를 나타낸 것으로 보고 이것이 회담에 긍정적으로 작용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북측의 이런 환대와 金위원장의 이례적인 환영은 여러 가지 의도를 가진 것으로 해석된다.

우선 金위원장이 남북간의 관계개선에 적극적이라는 점을 감추지 않았다. 특히 남한에 직접 중계되는 TV에 처음으로 모습을 나타낸 金위원장은 金대통령에게 고개 숙여 인사를 했으며 직접 안내도 하고 차를 탈 때도 예의를 갖추는 등 깍듯이 대우하는 모습을 보였다.

우리로선 '김정일의 재발견' 이다. 그것은 대북 포용정책을 취해온 김대중 정부에 대한 정중한 인사이자 기대의 표현이라고 생각된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북한에 대한 남측 국민의 거부감과 같은 것을 해소하려는 의도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金위원장은 또 전세계를 향해 화해의 제스처를 쓴 것으로도 볼 수 있다.

한국을 통해 전세계에 중계된 TV에 비친 金위원장은 남북 화해를 모색하는 지도자로 비쳤을 것

이며, 이는 앞으로 金위원장의 개방적인 활동 폭을 예고하는 전조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金위원장이 가장 깊이 의도한 것은 이와 같은 이례적인 환대를 통해 남북간 교류 협력의 확대, 특히 북한이 바라는 전력.비료의 지원과 농업기반 및 사회간접자본의 건설을 위한 장기적인 투자 등 경제적 지원의 폭을 확대하고자 하는 의도라고 해석된다.

우리는 金위원장의 이같은 파격 환대의 저변에는 기본적으로 개방을 향한 강력한 의지가 깔려 있다고 보며 그와 같은 정책 선회를 긍정적으로 해석하고자 한다.

따라서 두 정상이 흉허물없이 터놓고 직접 머리를 맞대고 협의한다면 남북간의 많은 현안이 해결될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두 정상은 공항에서 차를 함께 타고 영빈관까지 갔고, 정상회담과 단독회담을 잇따라 여는 등 허심탄회하게 속마음을 터놓을 기회를 가진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남북간의 몇가지 걸림돌을 제거하는 극적인 합의도 기대해본다.

金대통령은 서울 출발 인사에서 '뜨거운 가슴과 차분한 머리' 로 방문길에 오른다고 말했다.

따라서 겉으로 드러난 북측의 지극한 환대의 열기와 金위원장의 속뜻을 확인하면서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는 최대한으로 그들에게 필요한 지원을 하면서 동시에 이산가족 문제를 비롯한 화해와 긴장완화를 위한 실질적인 조치들에 합의할 것을 기대한다.

우리는 남북 정상회담을 보면서 부풀어 오른 남북의 뜨거운 기대가 오늘로 그치지 않고 두 정상의 합의에 따라서는 2차.3차의 만남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믿으며 그것이 장차 두쪽으로 나눠진 민족의 통합으로 향하는 역사적 첫걸음이 될 것을 거듭 기대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