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경제를 직접 챙긴다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김대중 대통령이 "경제를 직접 챙기겠다" 고 공언한 이후 경제팀들의 발놀림이 한결 빨라졌다.

대통령의 그같은 발언은 현 경제팀에 대한 우회적인 질타의 성격이 짙고, 따라서 경제장관들이 긴급 간담회를 통해 현안을 챙기고 대책 마련에 부산함은 너무도 당연하다.

대통령의 의중은 정책의 최우선 순위를 경제에 두고 개혁을 가속화하겠다는 뜻으로 일단 받아들여지지만 그 부작용에 대한 우려 또한 금할 수 없다.

대통령이 직접 챙겨야 할 정도로 경제상황이 심각한가 하는 의문이 안팎에서 제기될 수 있다.

경제장관들이 청와대 쪽으로만 '주파수' 를 맞출 경우 경제 운용과 개혁 추진은 더욱 경직화하고 왜곡될 우려가 적지 않다.

경제는 개인의 입김이 아닌 시스템으로 움직여져야 하고 대통령은 이 시스템이 원활히 작동될 수 있게 걸림돌을 제거하고 이해집단을 설득시키는 리더십을 발휘함이 제격이다.

현 경제불안은 금융 및 기업 구조조정의 부진에서 비롯된다. 그같은 부진은 이해 당사자들의 도덕적 해이와 시장 신뢰 상실에도 원인이 있지만 구조조정을 위한 제도적 근거를 제때 마련하지 못한 정부 당국에도 못지 않은 책임이 있다.

대통령이 선두에 나선다면 구조조정이 급류를 탈 수는 있겠지만 그럴 경우 밀어붙이기식이 되기 십상이다.

경제장관들이 뒤늦게나마 인위적인 은행 짝짓기를 그만두고 자율 합병을 위한 기본원칙 제시선에서 그친 것은 잘한 일이다.

내친 김에 금융 지주회사법과 구조조정 투자회사법을 속히 제정하고 은행법 개정에도 박차를 가해야 한다.

대통령의 발언 이후 재계 또한 부쩍 긴장하는 분위기다. 재벌은 해체만이 능사가 아니고 '재벌 이후' 에 대한 현실적인 대안을 찾아내야 한다.

당장 발등에 불인 시중의 자금경색 해소 또한 신속한 구조조정만이 근본적 해법이다. 4대 부문 개혁 가운데 특히 공공부문 개혁은 방향조차 흔들릴 정도로 부진하다.

따라서 이 부문만큼은 대통령이 나서 민간부문 개혁에 모범을 보여야 할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