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부부 '협의 이혼' 급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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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지난 5일 오후 서울지법 남부지원 2층 이혼 대기실.

崔모(34.회사원).李모(31.여)씨 부부가 나란히 앉아 자판기 커피를 마시며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들은 판사실에서 이름을 부르자 주저없이 안으로 들어간 뒤 2분 만에 협의이혼 절차를 마무리하고 "행복하라" 는 인사말을 나누고 곧 헤어졌다.

결혼생활 4년째에, 두 살 된 아들을 둔 부부였다고 보기에는 너무나 간편한 헤어짐이었다. 이날 하루 20여쌍의 부부가 간단한 절차를 거쳐 이혼했다.

인스턴트 문화 영향 때문인지 20, 30대 신세대 부부 사이에 협의이혼이 급증하고 있다.

까다롭고 복잡한 재판이혼과 달리 협의이혼은 부부가 이혼신청서를 법원에 제출하고 판사 앞에 출석, 이혼 의사만 확인하면 몇분 이내에 모든 절차가 마무리된다.

이혼 사유도 일일이 밝힐 필요가 없어 이별을 원하는 신세대 부부들이 협의이혼을 택하고 있는 것이다.

대법원에 따르면 협의이혼 건수는 1995년 7만여건에서 지난해 12만여건으로 5년 사이 5만건 가량 증가했다. 올해에도 4월까지만 4만쌍 이상이 이를 통해 헤어졌다.

반면 소송을 통한 이혼 건수는 95년 3만2천여건에서 지난해 3만9천여건으로 큰 변화가 없었다.

얼마 전 협의이혼을 한 李모(26.여)씨는 "어차피 헤어지기로 작정했으면 간단하게 절차를 마무리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해 남편과 위자료 등을 대강 정한 뒤 협의이혼을 신청했다" 고 말했다.

서울지법 남부지원 박우종(朴佑宗)판사는 "하루에 수십건의 협의이혼을 처리하고 있다" 며 "눈물을 흘리거나 후회하는 신세대 부부는 거의 없으며, 이혼 자체를 충격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같다" 고 말했다.

명지대 박부진(朴富珍.49.인류학)교수는 "결혼을 일종의 계약조건이 맞지 않으면 언제든지 쉽게 파기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신세대가 많아지면서 협의이혼이 늘고 있다" 고 지적했다.

정효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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