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과학칼럼

과학을 앞세운 사기 사건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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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외부에서 에너지를 공급하지 않아도 스스로 영원히 작동하는 장치를 만들었다는 ‘영구기관(永久機關) 사기 사건’일 것이다. 열역학의 기본 원리와 에너지 보존 법칙을 무시한 채, 무(無)에서 유(有)를 창출할 수 있다는 감언이설로 혹세무민(惑世誣民)하는 사기꾼들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자주 등장한 바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무한동력기관이니 물에너지 보일러니 운운하는 이런 종류의 사기꾼에게 속아서 명예 실추나 금전적 피해를 당하는 일이 간혹 있다.

인류 조상의 화석을 거짓으로 조작했던 이른바 ‘필트다운(Piltdown) 사기 사건’은 고고학상 최대의 가짜 발견 사건으로 꼽힌다. 1910년대에 영국의 아마추어 고고학자 찰스 도슨은 유인원에서 인류로 넘어오는 중간단계인 이른바 ‘잃어버린 고리’에 해당하는 두개골과 턱뼈를 발견했다고 발표했고, 그는 인류 진화 과정상의 수수께끼를 풀어낸 인물로 학계의 찬사를 받았다. 그러나 훗날인 1953년 정밀 조사 결과 그것은 인간과 오랑우탄의 뼈들을 붙이고 약을 발라서 조작한 가짜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런데 이와 매우 유사한 사건이 몇 년 전 일본에서도 일어난 바 있다. 오랫동안 일본 구석기 시대의 유물들을 무더기로 발굴해 ‘신의 손’이라는 명성을 얻었던 고고학자 후지무라 신이치가, 실은 유적지에 석기 등을 미리 파묻어 놓는 등 거짓으로 날조한 것으로 밝혀져 큰 충격과 파문을 몰고 왔다. 이 사건은 국가적 명예를 등에 업은 채 성급한 찬사가 쏟아졌다는 점 등, 예전의 필트다운 사기 사건과 여러모로 쌍둥이처럼 닮아 있다.

최근 1심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황우석씨의 줄기세포 논문조작 사건 역시 불명예스럽지만 근래에 일어난 주요 과학적 사기 사건의 리스트에 오를 전망이다. 이보다 시기적으로 조금 앞섰던 독일 출신의 미국 과학자 얀 헨드릭 쇤의 초소형 트랜지스터 조작 사건 또한 분야는 다르지만 황우석씨 사건과 너무도 공통점이 많다.

즉 ‘네이처’ ‘사이언스’ 등 세계 최고의 과학잡지에 획기적 논문들을 단기간 내에 쏟아내며 노벨상 후보로까지 떠오른 점, 서로 다른 논문에 동일한 그래프를 사용하거나 사진이 중복되어 검증 과정에서 꼬리가 밟힌 점, 당사자들은 단순한 실수였으며 연구기록과 자료가 모두 소실됐다고 궁색한 변명을 한 점, 심지어 논문조작이 밝혀진 이후에도 자신들은 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니 시간을 주면 실제로 더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고 강변한 점까지도 너무 비슷해서 쓴웃음이 나오게 한다.

그러나 과학기술계만큼은 철저한 검증의 과정을 통해 사기나 조작 등을 자체적으로 걸러낼 수 있는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으므로, 다른 분야에 비해 도리어 정직성이 높은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역사로부터 배우는 바가 있다면, 앞으로는 과학자들이 논문조작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대중은 과학기술을 빙자한 사기꾼들에게 부화뇌동(附和雷同)하거나 속지 않기를 기대해 본다.

최성우 한국과학기술인연합 운영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