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회담에 띄운다] 동강난 조국 하나 되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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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분단 55년의 역사가 바뀌려 하고 있다. 같은 민족이 반토막 나 불구의 삶을 살아온 세월이 어느덧 55년이라는 것이 끔찍스럽고, 그나마 60년이 되기 전에 그 해결의 길을 찾아나선 것이 다행스럽기 그지없다.

내가 '태백산맥' 을 쓴 근본적 이유는 민족통일에 작은 힘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하는 소망 때문이었다.

그건 나만이 아니라 분단시대를 사는 거의 모든 작가의 자각이고 사명이기도 했다.

6.25 이후 씌어진 이 땅의 소설 중 60% 이상이 '분단' 을 소재로 하고 있다는 것이 그 사실을 잘 입증하고 있다.

그러나 이데올로기를 앞세운 감정적 대립에서 벗어나 민족적 이성을 회복해 서로의 잘못을 반성하고 이해해야 한다는 '태백산맥' 의 지향은 올바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나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고발당했고, 몇년에 걸쳐 경찰과 검찰의 수사를 받으며 그 괴로움을 괴로움이 아니라 분단시대의 작가로서 당연히 겪고 넘어가야 하는 과정으로 받아들이려고 애썼다.

그러는 동안에 이제 남북정상회담이 추진되고 있다. 그건 소설 속에서 꿈꾸어 왔던 일이 현실로 이뤄지는 경이로움이다.

그러나 정상회담을 바라보는 민족 성원들은 기대와 희망에 못지않게 우려와 불안을 갖고 있다.

정치는 현실이라 한다. 그러나 현실만이 아니라 미래이기도 하다. 특히 분단문제는 미래성이 강하다.

민족분단의 세월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후대들이 가하는 비판은 그만큼 가혹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남과 북의 정상이 민족의 역사속에서 똑같이 박수를 받게 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우리 한반도를 에워싸고 있는 4대 강국이 형식적이든 책임회피적이든 간에 공통적으로 하는 말은 "한반도의 분단은 민족 내부의 문제이고 그들 스스로 알아서 해결할 문제" 라고 하고 있다.

이번 회담에 임하는 두 정상은 이 말을 명심해야 할 것이고, 그것이 함께 짊어지는 짐이 돼야 할 것이다.

내가 보기에 힘센 이웃들은 자기네 이익을 위해 두 형제를 이간시켜 싸움까지 하게 만들었다.

두 형제는 피나는 싸움을 하고, 그 감정으로 수십년이나 원수처럼 살았다.

그러나 뒤늦게 그 어리석음을 깨닫고 저버렸던 형제애를 회복해 한덩어리가 돼버리면 계속 더 싸우기를 바라는 이웃들인들 어찌할 것인가.

문학적 발상으로 한반도 상황을 너무 단순하게 보는 것이라고 생각할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복잡하고 미묘한 국제관계의 거미줄이 얽혀 있다고 한들, 결국 통일이란 민족이라는 동질성 위에서 하나가 되고자 하는 진정한 의지의 발현 아닌가.

그 굳건한 뭉침 앞에서 국제관계가 어떤 힘을 쓸 수 있을 것인가. 두 정상은 민족사 앞에 진실하고 겸손하게 머리를 맞대야 하고 양보와 이해의 미덕을 실현해야 할 것이다.

조정래 <작가.동국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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