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상임위원장 다수당 독식은 위험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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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국회 본연의 업무가 입법 활동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국회의 입법 활동 실적을 높이려는 국회 개혁의 필요성에 공감할 수도 있다. 18대 국회는 지난 2년간 6981건의 안건을 접수해 그 가운데 2249건만을 처리했다. 여야가 정쟁을 벌이는 바람에 예산심의 기일도 올해는 크게 줄어들었다. 국회의 저조한 법률안 처리 실적이나 국회 회기 말의 몰아치기식 법률안 처리는 비효율적인 국회의 상징으로 지적돼 왔다. 이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국회 입법 효율성 제고 방안이 제시돼 왔다.

현재 우리 국회에서 상임위원장은 의사를 정리하고 의사일정을 정하는 권한을 갖고 있어 실질적으로 상임위 의사 진행에 대한 전권을 행사하고 있다. 국회의장이 직권상정 권한을 발동하지 않는 한 상임위원장이 상임위에서 의사 진행을 거부하면 법안을 처리할 방법이 없다. 이로 인해 정부 여당이 사활을 건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에 의지하는 일이 적지 않게 일어났고, 그때마다 큰 정치적 홍역을 치러야 했다. 다수당이 상임위원장을 독식하게 되면 정부 여당의 정치적 부담은 크게 줄어들 것이다. 법안 처리 실적도 높아질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다수당이 상임위원장을 독식하는 제도 도입은 매우 신중하게 다뤄야 한다. 한국에서 다수당의 상임위원장 독식제도는 권위주의 시대인 12대 국회까지 계속됐다. 권위주의 치하 국회의 ‘효율성’을 회복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그렇게 되면 법안 처리 실적은 나아질지 몰라도 행정부에 대한 견제와 감시기능은 상당 부분 포기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권력 분립 제도하에서 입법기관의 독립성이 효율성의 잣대로 훼손돼서는 안 된다.

미국 의회에서도 전통적으로 다수당이 상임위원장을 독식한다. 하지만 이 제도는 우리나라와는 맞지 않다. 200년이 넘는 역사를 갖고 있는 미국 의회는 몇 차례의 의회 개혁을 겪으면서 성장해 왔다. 미국의 의회 개혁 중에서 오늘날의 상임위원회제도를 가져온 것은 1970년대 초의 의회 개혁이었다. 당시까지 미국 의회는 다수당이 상임위원장을 독식하고 상임위원장이 위원회의 법률안 회부 권한과 의사일정에 대한 전권을 행사했다. 남부 출신의 보수적인 상임위원장들은 개혁적 입법을 일관되게 저지했고 이에 대해 소장 의원들을 중심으로 일대 개혁이 일어난 것이다.

주목할 것은 민주당이 장악한 의회에서 민주당 소장의원들이 개혁을 주도했다는 점이다. 이후 법률심의권한은 상임위 내의 소위원회로 대부분 이관됐고 상임위원장은 경선으로 선출하고 있다. 미국 의회에서 상임위원장은 여전히 다수당이 독식하지만 법률안의 처리는 소위원회와 의원 개인들의 활동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또한 미국 의회의 입법 제도는 과정에 있어서 효율성보다는 절차적 합의를 중시하고 있다. 또 입법 절차 곳곳에서 거부권 행사를 용이하게 함으로써 소수 반대자의 의사를 더 크게 반영하는 제도다. 현재 우리 국회에서는 상임위원장 의석비례 배분 제도가 소수의 반대의사를 적극적으로 개진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절차적 수단이다. 현행 위원장 배분 방식이 비효율성과 정쟁의 원인으로 보일 수도 있으나, 다수당의 상임위원장 독식 제도는 효율성과 정쟁 감소를 위해서라도 반대자의 거부권 행사를 제도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 국회개혁 방안과 동시에 추진돼야 한다.

정하용 경희대 국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