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표 "반국가단체 규정 없앨 수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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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한나라당 내부에서 국가보안법 개폐 문제를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다. 박근혜 대표가 19일 "체제를 지키는 데 지장이 없다면 보안법 2조의 '정부 참칭(반국가단체)'규정을 없앨 수 있고, 보안법 명칭도 바꿀 수 있다"고 한 것이 계기가 됐다.

박 대표는 20일 상임운영위에서도 유연한 입장을 보였다. "정부 참칭 부분에 대해선 당 내에서도 이런저런 얘기가 있어 얼마든 논의해 볼 수 있고 여당과도 논의가 가능하다"고 했다. 그러자 이규택 최고위원이 "당에선 현실을 인정하고 전향적으로 나가야 한다"고 힘을 보탰다.

당에선 이미 원희룡 최고위원과 임태희 대변인.정병국 의원 등이 "정부 참칭 대목을 삭제해야 하며 보안법 명칭을 바꾸는 것도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을 해 왔다.

한 핵심 당직자는 박 대표가 이런 입장을 밝힌 데 대해 "여론은 우리에게 유리한 상황이지만 보안법 문제로 인한 국론 분열이 더 이상 지속돼선 안 된다고 보고, 여당과의 접점을 찾아보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반대 목소리도 만만치 않았다. 김영선 최고위원은 "정부 참칭 규정이 없다면 보안법 존속의 이유가 없다"고 했다.

김기춘.이방호.김용갑 등 당내 보수파 의원들이 주축이 된 '자유포럼'은 성명서를 내고 "박 대표가 정부 참칭 규정의 삭제 가능성을 내비친 것에 대해 우려를 표한다"며 "그것이 없어지면 대한민국 정통성이 위협받는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정부 참칭 규정은 타협의 대상이 될 수 없으며, 대표 혼자 결정할 사항도 아니다"고 말해 향후 당론을 모으는 과정이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했다.

열린우리당은 박 대표의 발언을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천정배 원내대표는 상임중앙위에서 "큰 틀에서 우리 당의 입장과 다를 게 없다"고 했고, 김영춘 원내수석부대표도 "뒤늦게나마 접점을 찾을 수 있겠다고 생각돼 다행스럽다"고 말했다.

열린우리당은 보안법 폐지를 반대하는 보수층을 설득하는 데 박 대표의 발언을 활용할 방침이다. 보안법을 폐지한 뒤 형법을 보완할지, 대체법안을 마련할지 등의 두 가지 방안을 놓고 고민 중인 열린우리당은 박 대표 발언 이후 조성되는 여론을 보고 최종 방침을 정할 것으로 보인다.

이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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