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당 네거리 놀이터에 러브호텔 난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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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아저씨랑 아줌마랑 술 먹으면 가는 데예요"

23일 오후 2시 서울 동작구 사당네거리 과천방면 버스정류장 뒤에 위치한 어린이 놀이터. 흙장난을 하던 초등학교 3학년 李모(9)군이 놀이터 양옆의 '러브호텔' 을 보고 어른에게 묻고 있다.

한 여자 어린이는 뾰족뾰족한 첨탑을 세우고 네온등으로 장식한 여관을 보며 "요술궁전 같다" 고 말했다. 이 놀이터를 중심으로 양옆 각 50m 거리에 7~8층 짜리 여관 8개동이 들어서 있다.

주민 현일심(玄一心.53.여)씨는 "아이들이 놀고 있는 놀이터 안 벤치에서 여관에 들어가는 문제로 실랑이를 벌이는 남녀도 있다" 고 혀를 찼다.

어린이 놀이터를 에워싼 러브호텔 때문에 동심이 멍들고 있다. 특히 중고등 학생 자녀를 둔 부모들의 마음은 더 안절부절이다. 여관 골목이 사당역으로 나가는 길목이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밤늦게 학원을 갔다오는 아이들이 여관을 들락거리는 남녀를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할지 두렵다" 고 말했다.

이곳이 여관골목으로 변하기 시작한 것은 1997년. 일반주거지역이었으나 96년 7월 사당역 역세권 개발 논리에 밀려 상업지역으로 용도가 변경되면서 2년여 만에 여관 8동이 문을 열었다.

또 올 들어서만 2건의 허가신청이 구청에 접수됐다. 지금은 여관 출입구가 주택가를 등지고 동작대로쪽으로 나있지만 추가로 여관을 내려면 주택가와 대문을 마주 볼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더우기 학교 주변은 여관 등 청소년 유해시설이 들어설 수 없지만 어린이 놀이터 주변에 대해서는 규제가 전혀 없어 허가를 막을 방법도 없다.

관악구청 건축과 관계자는 "정부 방침이 허가 절차를 간소화하는 추세" 라며 "법적으로도 하자가 없어 구청이 나서서 적극적인 조치를 하기는 어렵다" 고 말했다.

한 관계자는 "주민들의 뜻은 전달하지만 건물주가 의사를 굽히지 않으면 도리가 없다" 고 털어놨다.

이에 따라 주민들은 '마을 지킴이' 모임을 만들고 대책 마련을 호소하고 있다.

경실련 도시개혁센터의 김병수(金兵洙)부장은 "외국에서는 학교뿐 아니라 어린이들이 이용하는 공원.놀이터.체육시설 등의 주변 환경을 엄격히 관리하고 있다" 고 말했다.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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