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난 여당이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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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장면 1)야당 당선자가 기자들의 질문공세와 카메라 세례 속에 곤혹스런 표정을 지으며 검찰 소환에 응하고 있다.

(장면 2)개인 사정을 이유로 소환에 불응한 여당 당선자가 취재진의 눈을 피해 다음날 새벽 검찰 청사에 나와 간단한 조사를 받고는 사라진다.

16대 총선 선거법 위반 사범을 수사 중인 서울지검에서 22~23일 이틀동안 일어난 상반된 광경이다.

한나라당 정인봉(鄭寅鳳.서울 종로)당선자는 22일 공개리에 검찰에 소환돼 톡톡히 '망신' 을 당한 반면, 민주당 이재정(李在禎.전국구) 당선자는 한차례 소환에 불응하는 등 검찰 수사일정까지 '조절' 한 것이다.

李당선자는 또 불과 3시간 정도 검찰 조사를 받은 뒤 취재진을 감쪽같이 따돌리고 유유히 귀가했다.

아침부터 李당선자의 소환모습을 취재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던 기자들 사이에서 불평이 터져나왔다.

"여당과 검찰이 짜고 李당선자를 몰래 소환한 거 아냐. " 물론 검찰은 펄쩍 뛴다.

李당선자가 전날 수사검사와의 전화통화에서 "아침 일찍 조사를 받게 해달라" 고 요청해 검사가 "안된다" 고 거부했는데도 李당선자가 막무가내로 오전 7시쯤 청사로 나왔다는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그러나 검찰 조사는 업무가 시작된 아침 9시부터 이뤄졌다" 고 해명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2시간 정도 피의자 대기실에서 기다리던 李당선자가 출근하는 수사검사에게 '왜 이렇게 늦게 나오느냐' 고 면박을 줬다" 고 말하기도 했다.

선거법 위반혐의를 받고 있는 피조사자 신분인 李당선자의 당당한 태도는 계속됐다고 한다.

검찰은 李당선자가 올해초 민주당 창당대회에서 대의원들에게 기념품을 돌린 혐의에 대해 "나와는 무관한 것이다" "내가 선거법 위반 혐의자로 거론되는 것 자체가 불쾌하다" 고 밝혔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李당선자의 소환을 둘러싼 해프닝을 언론이 확대해석하지 말아달라는 주문도 잊지 않았다.

하지만 검찰에서 연출된 여당 당선자와 야당 당선자의 상반된 장면은 아무래도 개운치 않다. 그런 결과를 빚게된 게 누구의 탓이든 검찰과 집권당의 관계를 의혹의 눈으로 보지 않겠는가.

박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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