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샛별] 소프라노 이명주, 정명훈을 사로잡은 타고난 꾀꼬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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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라노 이명주(28·사진)씨. 서울예고 재학 시절 선생님들에게 ‘학교 설립 이후 최고의 입학 점수’라는 말을 들었다. 스스로도 “어떻게 그렇게까지 올라갔는지 모르겠다”고 하는 완벽한 고음, 정확한 음정과 섬세한 소리 덕분이었다.

그에게 안 좋은 일은 꼭 중요한 때에 생겼다. 대입 준비에 정신 없던 고3 시절, 이씨는 아버지의 뇌출혈 소식을 들었다. 집안사정이 급격히 나빠졌다. 장학금·아르바이트 아니면 도저히 대학을 다닐 수 없었다. “어린 아이들 레슨 등 아르바이트를 하도 많이 해서 나중에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을 정도”였다. 실기 수석으로 입학한 서울대 4학년, 미국 유학 준비 중에도 시련을 겪었다. 아버지가 대장암 말기 판정을 받은 것. “힘든 가족을 놓고 외국에 갈 수 없었던” 그는 꿈을 잠시 접기로 했다. 대신 고양시립합창단에 취직했다. 1년 반 정도 일하며 학비를 모았다.

“남들보다 앞서 출발했는데 한참 뒤쳐지는 것 같았다. 언제쯤 큰 무대에 서볼 수 있을까 조바심이 났다.” 이씨는 합창단 중 한 명으로 무대에 서면서도 늘 주연이 될 날을 마음 속에 그렸다. “작은 기회라도 오기만 하면 꼭 잡으려 했다”고 했다.

그는 지난해 지휘자 정명훈씨의 눈에 띄었다. 오페라 ‘라보엠’ 콘서트와 광복절 기념 공연 등, 정씨는 부드러운 소리의 소프라노가 필요할 때마다 이씨를 불렀다. 이씨는 정씨가 지휘하는 30일 서울시립교향악단 베토벤 ‘합창’ 교향곡에도 독창자로 출연한다.

이씨는 독일 학술교류처 장학금을 받아 올해부터 뮌헨 음대에서 공부할 수 있게 됐다. 새처럼 높은 소리로 노래하던 ‘콜로라투라’였던 그는 유학 후 안정감 있는 영역의 ‘리릭’ 소프라노로 방향을 바꿨다.

그에 대한 칭찬도 ‘소리가 좋다’에서 ‘감정이 좋다’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 그는 “힘든 시간이 없었다면 노래도 못했을 것”이라며 지난 시간을 음악에 녹여내고 있다.

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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