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칼럼] "돕겠다는 말이나 말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법대 교수 하는 친구가 술 한번 살테니 기업들의 애로사항이나 규제 얘기를 해달라고 합디다. 아예 그 자리에 가지도 않았습니다. 얘기하면 뭐합니까. 고쳐지는 것도 없는데. " 경제위기 논란을 벌이느라 우리가 너무 쉽게 흘려 버리는 어느 중소기업 사장의 하소연이다.

지난 주 전경련이 조사.발표한 기업활동 관련 규제를 보면 과연 이 나라가 언제쯤이면 '세계에서 가장 기업 하기 좋은 나라' 가 될 수 있을까 싶다. 철마다 규제개혁을 외쳐왔음에도 불구하고 2개 이상 부처가 중복규제하는 법률이 2백92개나 된다고 한다.

표시광고의 경우에는 공정거래위원회 등 13개 부처가 88개의 법률로 규제한다고도 한다.

그런가 하면 바로 다음날 중소기업특별위원회가 발표한 지난해 중소기업 정책자금 지원실적을 보면 더 한심한 생각이 든다. 정책자금으로 배정된 예산의 상당 부분이 사용조차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신약개발과 관련한 복지부의 정책자금은 지원실적이 10%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행여나 우리가 장사가 잘돼 정책자금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는 마십시오. 정부자금 한번 쓰려면 제출해야 하는 서류가 왜 그리 많은지, '만나서' 설명해야 할 것도 얼마나 복잡한지 아예 포기하고 지내는 겁니다. "

정책자금 신청을 포기한 어느 중소기업가의 설명이다.

정부지원과 규제는 동전의 양면이다. 좋게 보면 옥석을 가려 지원대상을 골라야 하는 부처가 '지원하기 위해 규제가 필요하다' 는 것이다.

그러나 일상을 규제 속에서 보내야 하는 사업자들의 생각은 다르다. 부처가 영향력를 행사하기 위해, 즉 '규제를 하기 위해 지원을 한다' 는 얘기다.

그 중에는 "허가권을 매개로 하는, 기업과의 '부적절한 관계' 를 염두에 두고 있기에 규제가 풀리지 않는다" 고 극언하는 사람도 많다.

혹시 민간이 바라는 진정한 정부지원은, 중복규제로 발목 잡힌 저금리 융자지원이 아니라 규제혁파를 통한 자유로운 기업활동의 보장과 건전한 경제운용을 통한 저금리 환경조성이 아닐까.

"지원 얘기하기 전에 발목이나 잡지 말지. " 메아리 없는 기업들의 외침은 오늘도 계속된다.

김정수 전문위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