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기 왕위전] 서봉수-안조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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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신예강자와 노장 '패기와 경험의 싸움'

제1보 (1~16)〓서봉수 2승, 안조영 2패. 비틀거리던 노장 서봉수9단이 언제 그랬느냐는 듯 살아난 반면 싱싱하게 솟아오르던 안조영5단은 소금맛을 본 배추처럼 시들해졌다.

徐9단은 40대 후반이고, 安5단은 21세 호시절이다.

徐9단은 풍부한 경험을 자랑하지만 그 경험이란 게 승부에서는 꼭 좋은 쪽으로 작용하는 것만은 아니다.

매서운 칼맛을 본 사람의 가슴엔 겁이 숨어드는 법. 자신감을 잃으면 이상하게도 수가 안보인다.

그래서 어떤 때는 백지상태의 패기가 승부에 유리하게 작용할 때도 있다.

安5단도 요즘엔 그걸 느낄 것이다. 그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정상에 도전하는 등 승승장구했으나 도전기에서 이창호9단에게 한칼을 당하더니 그 후부터 기세가 전만 못하다.

4월 11일 한국기원. 두 사람은 마주앉아 조용히 목례를 나눈다.

26년이란 나이 차이도 바둑판 앞에서는 무의미한 것. 잠시 묵상하던 安5단이 흑1, 3으로 두자 徐9단도 흉내내듯 백2, 4로 따라 둔다.

6의 급한 협공은 요즘 徐9단의 바둑에서 자주 등장한다. 특별히 이론적인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재미를 본 수는 맛난 음식처럼 친근해져 자꾸 사용하게 될 뿐이다.

安5단은 흑11로 비슷하지만 약간 여유있는 협공을 택했다.

다음 수는 15. 고수들의 바둑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독특하고도 실전적인 감각인데 이 수가 원하는 것은 '참고도' 흑4까지일 것이다.

주문대로 두는 것은 왠지 싫다며 徐9단은 16으로 수순을 틀었다.

박치문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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