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철 수사 정치적 배경설등 무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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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경부고속철도 차량 선정 로비 사건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벽에 부닥쳤다.

사건의 주범으로 알려진 최만석씨가 지난해 검찰 조사 이후 돌연 잠적해 버렸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崔씨를 프랑스 알스톰사의 로비스트로 추천한 호기춘씨도 모든 책임을 崔씨에게 떠넘겨 수사가 좀처럼 진척되지 않고 있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특히 崔씨의 해외 도피설이 끊이지 않고 있는데다 외국은행 예금계좌에 대한 자금추적도 여의치 않아 이번 사건이 자칫 미궁에 빠질 공산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수사가 난관에 봉착하게 된 과정을 좀 더 들여다 보면 검찰의 수사 의지에 의구심을 갖게 한다.

먼저 검찰은 수사에 착수하면서 지나치게 뜸을 들였다.

서울지검 외사부-대검 중수부로 이어지는 수사과정이 3년 가까이 걸린 점은 선뜻 납득할 수 없는 대목이다.

"정치적 배경이 있었던 것 아닌가" 하는 지적이 계속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또 崔씨가 도주하게 된 경위도 검찰 수사 관행상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검찰은 "崔씨를 소환할 때만 해도 범죄 혐의를 입증할 수 없었다" 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1997년 서울지검이 이미 내사한 상황에서 崔씨를 단순히 참고인으로 불렀다는 것은 설득력이 약해 보인다.

설사 검찰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더라도 '중요한 참고인' 에 대한 사후 관리가 허술했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崔씨가 검찰의 소환 통보를 받고 '거래' 를 시도한 뒤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줄행랑을 쳤다" 는 관측까지 내놓고 있다.

반면 검찰 수사가 외견상 어려움에 처했을 뿐 실제로는 崔씨로부터 로비를 받은 정치인들의 비리 혐의를 상당 부분 확보했다는 지적도 만만찮다.

검찰 관계자는 "돈을 준 사람과 목격자가 있다 해도 당사자가 극구 부인하면 공소 유지가 어렵다" 며 "崔씨를 검거하기 전까지는 주요 인물에 대한 소환이 불가능하다" 고 말했다.

崔씨의 진술을 토대로 관련자들에 대한 혐의 사실을 포착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검찰이 崔씨 도피를 명분으로 사건 수사에서 발을 빼려는 수순을 밟고 있다는 전망마저 나오고 있다.

박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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