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예금보험공사 사장 왜 안뽑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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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예금보험공사가 한달 가량이나 개점 휴업 상태다.

전임 남궁훈사장이 지난달 중순 금융통화위원으로 자리를 옮긴 이후 아직까지 후임자가 결정되지 않고 있다.

예보공사는 금융 구조조정과 관련해 할 일이 많은 기관이다.

9일 발표된 투신 지원대책도 예보공사가 자금조달에 주도적인 역할을 맡는 것을 전제로 작성됐다.

물론 정책 결정은 재정경제부나 금융감독위원회가 하지만 예보공사가 손발 역할을 해주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할 일은 잔뜩 주면서 막상 사장자리를 비워놓고 있는 것은 장수 없이 싸움에 나서도록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당초 공사는 43조5천억원의 공적자금을 조성해 금융 구조조정에 사용해 왔으나 현재는 이 돈이 거의 바닥난 상태다.

돈이 없으면 갖고 있는 재산을 팔아서 돈을 마련하거나, 딴 데서 빌려오는 것이 시급한 데도 최종 결정권자인 사장이 없으니 제대로 돌아갈 수가 없다.

공적자금을 집행하는 곳이란 공통점 때문에 예보공사는 흔히 자산관리공사와 비교된다.

자산공사는 조금씩이 나마 공적자금을 거둬들여 현재 6조원 정도를 확보하고 있어 거의 회수하지 못한 예보공사와 대조를 보이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두 기관의 성격이 다른 이유도 있다.

자산공사는 시장에서 팔릴 만한 자산을 많이 갖고 있는 반면 예보공사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업무 추진력에서도 차이가 크게 난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예보공사는 사장이 없는 만큼 추진력도 떨어진다는 것이다.

최근 논란이 되는 무보증채 발행 문제만 해도 사장이 없어 정부측과 의사소통이 잘 안되는 분위기다.

공사 관계자는 "무보증채를 발행하게 되면 원리금 상환 부담 때문에 공사 전체가 부실화할 수 있다" 며 "정부가 이런 사정을 잘 모르는 것 같다" 고 우려했다.

이에 대해 권순현 대우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정부가 공적자금과 관련, 사태의 심각성에 비해 너무 안이하게 대처하는 것으로 보인다" 며 "금융구조조정이 시급하다면서 막상 예보공사 사장자리를 비워놓고 있는 이유를 모르겠다" 고 지적했다.

이런 인사 지연 역시 시장에서 정부의 신뢰를 떨어뜨린다는 그의 지적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주정완 기자 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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