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 칼럼] 투신 감독 영이 서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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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지난달 25일 정부가 투신사 구조조정안을 발표할 때만 해도, "한투.대투 외의 투신사에 대해서는 지원이 없다" 는 입장이 분명했다.

그러나 2주일 후 정부는 "투신사가 자구책을 마련했으니 지원하겠다" 고 입장을 바꿨다.

지원 얘기를 꺼내는 데 2주일의 주가하락과 시장불안이 소요된 것이다.

정부가 선뜻 나설 수 없었던 이유는 여러 가지다.

'공적자금 투입〓국가채무 누적' 운운하는 야당, 또 '정부지원〓방만한 국가경영' 으로 보는 여론과 '신탁부실〓투자자 책임' 원칙도 부담이다.

그러나 정부가 "자구책을 마련하라" 는 '구두감독' 이상 강제할 수 없고 투신지원을 꺼리는 이유는 다른 데 있다. 느슨한 금융감독 때문이다.

평소 투신에 대해 감독을 느슨하게 했으니, 부실 발생시 구조조정을 강제할 수 없고, 구조조정을 강제할 수 없으니 투신사를 지원할 제도적 근거도 없다는 얘기다.

금감원 관계자는 "투신사도 감독대상이다.

다만 투신사를 은행처럼 엄격히 감독하지 않을 뿐이다.

투신사가, 예금을 다루는 여신금융기관이 아니라 운용실적상품인 신탁을 다루는 곳이기 때문" 이라고 설명한다.

문제는 우리 투신은 실적상품이 아니라는 것이다.

증권연구원의 한 전문가는 "고객계정과 투신사 자체계정간 자산이동이 다반사였고, 대우채권의 경우는 공식적으로 실적이 아닌 장부가로 돌려줬으며, 최근의 고객계정 '클린화' 도 실적환매 원칙에 어긋나는 일" 이라고 지적한다.

투신사가 변칙영업을 하고, 이를 금융감독기관이 눈감아 준 것이다.

이래서는 금융감독의 영(令)이 서기 힘들다.

한마디로 투신사의 불법영업이 근절되고 '원초적 부실' 이 해소될 때까지는, 투신사를 은행처럼 엄격한 금융감독 하에 두어야 한다는 얘기다.

그 핵심은 자기자본과 부실운용 등 투신 건전성에 대한 객관적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다.

그래야 금융감독에 영이 서고, 정부가 강제할 수 있는 구조조정의 범위와 강도, 그리고 관련된 정부지원을 제도화할 수 있을 것이다.

또 그래야 투신사가 정부눈치 보지 않고 '자력으로 '평소에 구조조정을 할 것이고, 극단적인 경우 정부도 여론의 눈치를 보지 않고 신속히 지원에 나설 수 있을 것이다.

김정수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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