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경제정책 중심 좀 잡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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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최근 정부의 경제정책이 임시방편적인 단기 처방에 치우친 나머지 서로간에 앞뒤가 맞지 않고 주요 정책 당국자들 또한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는 등 혼란과 난맥상을 드러내고 있다.

정부 스스로가 당초 정한 원칙을 지키지 않고 시장 안정과 상황 논리에 얽매여 처리를 미루거나 우물쭈물하는 통에 결과적으로 비용만 턱없이 많이 들고 경제의 큰 틀을 왜곡시키는 사례가 늘고 있다. 공적자금 투입과 현대투신 해법부터가 그렇다.

금융 구조조정은 미봉적으로 처리할수록 그 부실은 속으로 더 깊어지게 마련이다.

부실 요인을 제대로 도려내지 않고 단기적인 시장 안정에 급급해 때를 놓치고 공적자금의 투입 규모만 눈덩이처럼 불려놓았다.

현대투신 처리의 경우 총수의 주식을 담보로 내놓게 함으로써 총수의 계열사 경영 관여를 금지하는 재벌개혁 원칙을 정부 스스로 어긴 꼴이 됐다.

물론 당장의 시장 안정을 위해 현실적으로 불가피한 측면 또한 없지는 않다.

하지만 시장 안정에는 민간기업 못지 않게 정부 정책의 신뢰가 중요하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그러잖아도 금융 및 기업 구조조정 지연에 대한 바깥의 불신이 팽배하고, 원화 강세와 금리 불안.무역수지 악화.인플레 우려 등 새로운 불안 요인들까지 겹쳐 나라 안팎에서 위기 경보들이 그치지 않고 있는 판이다.

그런데도 금리와 경상수지.물가.성장률 등에 관한 당국자들의 엇갈린 발언이나 어정쩡한 대응들은 거시경제의 안정적 운용에 대한 정부의 의지마저 의심케 한다.

경제정책은 어차피 선택의 문제고 당국자간에 입장 차이는 있을 수 있다.

이런 이견들을 정부차원에서 조율.조정해 시책들간에 연계성과 일관성을 확보하는 일이 중요하다.

그럼에도 금리의 결정기관을 제쳐두고 다른 부처나 청와대 경제수석이 금리를 올려서는 안된다는 식으로 미리 못을 박는 것은 정부의 위신과 신뢰를 스스로 실추시키는 행위다.

구조조정의 지속적 추진을 위해 저금리.저물가 체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정부의 입장은 이해한다.

그러나 환율의 급격한 하락을 방지하고 원자재나 자본재 수입의 억제를 통해 성장의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는 한은 등의 주장도 새겨들어야 한다.

경제정책의 현재와 같은 난맥과 혼선은 경제정책의 종합 조정기능 부재에도 적잖은 원인이 있다.

경제부총리 신설 때까지 손을 놓고있을 것이 아니라 기존의 경제조정회의에서 정책조정 기능과 권한을 강화해야 한다.

우리 경제의 대외 신인도와 투자 신용등급은 계속 제자리걸음이고 현대 쇼크 등에 따른 시장의 불신은 지금도 가시지 않고 있다.

게다가 노동계의 5월 '춘투(春鬪)' 마저 카운트 다운에 들어갔다.

정부부터 경제정책에서 중심을 잡지않으면 한국 경제의 '배' 는 어디로 갈지 모를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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