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면초가 하토야마 … 미, 대화 상대 인정 안 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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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정권 상대 안 해?’

일본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이 7일 보도한 미·일 관계 기사의 제목이다. 신문은 하토야마 총리가 주일미군 후텐마(普天間) 기지 이전 문제를 놓고 오락가락하는 사이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 내에서 하토야마 총리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했다고 전했다. 미국 측은 하토야마 총리가 2006년 양국이 합의한 기지 이전 계획을 재고하려는 데 불만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연내 이전계획 확정 여부에 대한 방침을 계속 바꾸고 있는 데 대해서도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이 일본과 거리를 두고 있는 정황들은 여러 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이달 들어 오바마 대통령은 기후변화 문제 등을 협의하기 위해 주요국 정상들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하토야마 총리는 제외했다.

또 총리의 외교 자문을 맡고 있는 데라시마 지쓰로(寺島實郞) 다마(多摩)대 총장이 지난주 워싱턴을 방문했지만 미 국무부의 현직 관료들은 그를 만나주지 않았다. 데라시마는 사민당 등 연립정부 파트너 정당들과의 관계 때문에 하토야마 정권이 후텐마 기지 이전에 관한 조기 결론을 내기 어렵다는 점을 설명하기 위해 방미했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일본은 독립국이며, 주일미군을 지금의 3분의 2까지 감축해야 한다”는 말을 하고 다녔다. 이 때문에 워싱턴의 지일파들이 적잖이 당황했다고 한다. 오히려 하토야마 총리의 ‘반미 외교관’을 미국인들의 뇌리에 극명하게 심어준 꼴이 됐다.

결국 그동안 보여준 미국 측의 일련의 대응은 하토야마 정권을 대화 상대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는 해석으로 이어졌다. 일각에서는 미국이 벌써 하토야마 총리에 대한 ‘왕따’ 작전에 나선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미 국방부는 분노에 가까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국방부 내에서는 “하토야마 총리가 주일미군 철수를 원하는 것 아니냐”는 말들이 나오고 있을 정도다. 국방부 측은 “이전이 늦어지는 데 따른 보수비용은 일본이 부담하라”고 노골적으로 으름장을 놓고 있다.

워싱턴 지일파들의 입지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지난달 오바마 대통령 방일 때까지는 후텐마 문제에 대한 결론이 날 것이라고 백악관에 보고했던 커트 캠벨 국무부 차관보나 일본 측이 요구했던 오키나와 기지 부담 경감안을 받아들여 본국을 설득했던 존 루스 주일대사는 발붙일 곳을 찾기 어렵게 됐다고 신문은 전했다.

미·일동맹 균열 조짐은 미국의 외교 전문가 조사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났다. 미 민간 조사단체인 퓨 리서치센터가 미국 싱크탱크인 외교협회(CFR) 회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일본이 미국의 중요한 동맹국”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16%에 그쳐 2005년도 조사에 비해 절반으로 줄었다. 반대로 “미·일 관계의 중요성이 앞으로 낮아질 것”이라는 예측을 지지한 사람은 7%에서 16%로 늘어났다.

7일 출범 82일째를 맞은 하토야마 내각에 대한 지지율 역시 떨어지고 있다. 요미우리(讀賣)신문이 지난 주말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하토야마 내각에 대한 지지율은 59%로, 출범 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도쿄=박소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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