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률만 집착하는 프로 오래 못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6면

한국 시청률 조사분야의 '대모' A C 닐슨의 신해진(54.본명은 변해진) 전무이사가 30일 현직을 떠난다.

신씨는 지난 1991년부터 시작된 국내 TV시청률 조사의 산파역. 당시 A C 닐슨에서 리테일 인덱스(Retail Index.소매지표조사)를 담당하다 시청률 전문 조사기관인 '미디어 서비스 코리아' (MSK)의 설립과 함께 합류, 지금까지 시청률 조사에 전념해 왔다.

MSK가 지난해 A C 닐슨에 합병돼 신씨는 원래의 '고향' 으로 돌아온 셈이지만 이제 e비즈니스쪽으로 진로를 선회, 새로운 인생 설계에 나섰다.

"벌써 강산이 변한다는 10년이 됐습니다. 초창기엔 정말 계란으로 바위치는 기분이었어요. 시청률이란 개념부터 정립해 나가야 했으니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그러나 신문매체의 이해와 방송사들의 전향적인 자세로 인해 빨리 토착화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초창기 신씨가 특히 괴로웠던 일은 조사방법과 결과에 대한 방송사들의 지나친 관심이었다.

신씨는 "객관적인 데이터와 주관적인 견해의 차이로 인해 시청률 결과를 수용할 수 없다는 태도가 많았다" 며 "하물며 조사방법의 노하우까지 시비를 거는 데는 견디기 힘들었다" 고 회고했다. 심지어 "결과의 수치를 높게 고쳐 달라는 PD들의 요구도 많았다" 고 한다.

이와 관련해 신씨는 시청률 조사의 '비법' 하나를 공개했다. "모집단(조사대상지역)의 샘플(가구)수는 모집단의 인구에 비례하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모집단이 얼마나 단순하냐 복잡하냐를 따져야 합니다. 언어와 인종 등에서 차이가 없는 서울을 예로 든다면 굉장히 단순한 모집단입니다. 그러니 샘플사이즈를 작게 해도 결과에 큰 편차가 없습니다. " 신씨는 "겨우 2백50~60가구의 샘플사이즈로 얼마나 정확한 통계를 낼 수 있느냐" 는 식의 일반인들의 '오해소지' 에 대해 이같이 설명했다.

신씨는 시청률 조사와 정치뉴스의 상관관계에 대해서도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구체적으로 밝히기는 곤란하지만 한때 시청률을 높여 시청자들의 관심을 유도하기 위해 자극적인 소재의 뉴스를 많이 보도하라는 고위층의 요구도 없지 않았던 걸로 압니다."

그러나 신씨의 '시청률론' 은 명쾌하다. "질적인 수준을 확보하지 않고 순간적인 시청률만 집착하는 프로는 결코 오래 살아남지 못합니다."

신씨는 이화여대 불문과를 졸업하고 캐나다 토론토대학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한때 캐나다 국영 CBC TV의 기자로 활동했다.

정재왈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