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는 우리 지방 정권이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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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사단법인 고구려연구재단(이사장 김정배)이 16~17일 서울 소피텔 앰배서더 호텔에서 개최하는 '한국사 속의 고구려 위상'이라는 주제의 학술회의에 참석한 중국학자들은 이 자리에서도 고구려는 중국 역사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첫 발표자로 나선 중국 선양(瀋陽)동아연구센터의 쑨진지(孫進己.73) 주임은 "고구려 당시를 두고 말한다면 고구려는 중국의 소수 민족이고 지방 정권"이라는 중국의 왜곡된 입장을 대변했다. 그러면서 "현재의 영토와 인구가 역사 계승을 판단하는 기준"이라며 "점유율로 볼 때 중국이 고구려사의 가장 주요한 계승자이고, 한국.북한을 비롯한 동북아 여러 나라가 고구려사를 함께 계승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른바 '하나의 역사를 여러 나라가 공유할 수 있다'는 '일사양용(一史兩用)'론이다. 고구려 문제가 불거진 이래 중국 학자가 직접 방한해 논문을 발표하기는 처음이다.

하지만 그의 주장은 각국 발표자가 자리를 함께 한 기자 간담회에서 집중적으로 비판받았다. 인도 출신의 판카지 N 모한(호주 시드니대) 교수는 "석가모니의 탄생지가 현재 네팔에 있는데 중국식대로라면 석가모니는 네팔 사람인가. 또 중국이 네팔을 병합하면 석가모니가 중국인이 된다는 말인가. 역사의 흐름은 국경의 변화에 따라 바뀔 수 없다"며 중국 주장의 허점을 파고 들었다.

몽골의 오 바트사이한 교수는 "고구려는 명백히 한국의 역사"라고 강하게 몰아붙이며 중국의 몽골사 왜곡과 관련된 일화를 소개했다. "1994년 중국의 몽골사 왜곡이 문제가 돼 당시 몽골 외교부가 강력히 항의했다. 중국 외교부는 '일부 학자의 생각이지 정부의 입장은 다르다'고 해명하며 넘어갔다. 하지만 다음 해에도 왜곡된 주장을 담은 책이 출간되는 등 변한 것이 없었고, 이후 몽골 학자들은 연구과 신문 기고를 통해 대응해 오고 있는 형편이다."

오 바트사이한 교수는 "칭기즈칸이 중국인? 몽골의 역사를 중국사로 편입시키려는 중국측 역사 왜곡의 뿌리는 아주 깊다"며 "최근 칭기즈칸까지도 중국인이라고 강변하는 그들을 보노라면 칭기즈칸이 남긴 '남쪽에 중국이 있음을 아침마다 자손들에게 상기시켜라'는 경구의 깊은 뜻이 더욱 새롭게 되새겨진다"고 말했다.

미국 UCLA대의 존 B 던컨 교수도 "지난 1000여년 동안 한국이 공동체로서의 정체성을 형성하는데 고구려는 주요한 '역사의 기억'으로 작용했다"며 "고구려를 한국사의 일부로 본다"고 거들었다.

일반인 300여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오전 10시부터 소피텔 앰버서더 서울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학술대회에서 중국은 '사면초가(四面楚歌)'의 고립감을 느껴야 했다.

대회에는 중국.몽골.호주.미국.러시아.일본 등 7개국의 역사학자 20여명이 발표.토론자로 참여했다.

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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