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남기 부주석은 중국 소수민족으론 흔치 않게 군.정계의 최고위직에 오른 입지전적 인물로 중국내 2백만 조선족 사회에서 가장 존경받는 우상과 같은 존재다.
趙부주석은 충북 청원군 강태면 태성리 출생으로 12세 때 일제박해를 피해 중국행을 결심한 할아버지 조동식을 따라 중국 동북부인 지린(吉林)성 융지(永吉)현으로 이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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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는 3.1운동 당시 봉화대 횃불시위를 주도해 3년 동안 투옥된 독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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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린중학을 졸업하고 1944년 팔로군에 입대해 항일전.국공내전에 참전한 그는 6.25 당시 동북지방에서 훙쉐즈(洪學智)총후근부장(總後勤部長.병참사령관)의 참모로 간접 참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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洪의 신임이 대단히 깊어 6.25 기간 중에는 물론 이후에도 야전군 지휘관을 맡고 싶다는 그의 의사는 번번이 무시됐으며 때문에 정치적 부침을 겪지 않고 군수전문가로 입지를 닦은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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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년 지린성 당서기를 역임한 뒤 87년에는 洪의 뒤를 이어 총후근부장에 올랐다.
세계 군비의 0.5%로 세계 병력의 11%를 차지하는 중국군의 보급을 원활하게 처리한 공로를 인정받아 88년 덩샤오핑(鄧小平)의 칭찬을 받으면서 최고 계급인 상장(上將)으로 승진했다.
'82년부터 97년까지 '
세차례나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중앙위원을 역임했으며 98년 중국 인민정치협상회의(政協) 부주석으로 선출돼 활동 중이다.
98년 정협 대표단을 이끌고 북한을 방문하기도 했다.
베이징〓유상철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