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공적자금 성적표부터 공개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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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공적자금 추가조성이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이용근(李容根) 금융감독위원장에 이어 어제는 이헌재(李憲宰) 재정경제부장관이 본지와의 인터뷰와 TV출연을 통해 필요성을 인정했다.

"추가조성은 없다" 던 호언장담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현실적으로 공적자금의 추가조성 및 투입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기업과 함께 경제의 두 축 중 하나인 금융은 속골병이 단단히 들어있다.

서울.제일은행, 대한생명, 서울보증보험, 나라종금, 한투.대투 등 투신사에다 금고업…. 널뛰는 증시와 금융시장 불안의 배경에는 이렇듯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들이 자리잡고 있다.

우리 경제가 정상화되기 위해서는 빨리 메스가 가해져야 하며, 여기엔 엄청난 돈이 추가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공적자금 추가조성.투입은 쉬쉬할 게 아니라 되레 서둘러야 하는 사안이다.

하지만 그 전에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중요한 전제조건들이 있다.

정부 인식과 방법이다.

공적자금은 결국 국민부담으로 이어진다.

때문에 우선 지금까지 들어간 64조원에 대한 구체적인 성적표부터 공개해야 한다.

어디에 얼마가 쓰였는데 성과는 어떤지, 또 돌려받을 줄 알았는데 사실상 까먹은 돈은 얼마나 되는지 등에 철저한 검증과 반성이 선행돼야 한다.

'추가조성 없다' 던 정부가 왜 하루아침에 태도를 바꿀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해명조차 없이 슬그머니 천문학적 규모의 돈을 다시 조성하겠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

이 과정에서 엉터리 보고나 심각한 운영상 실책이 있었는지를 따져 책임도 물어야 같은 실수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추가조성 규모를 최소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앞으로 더 필요한 돈은 최소한 25조~30조원으로 추산되고 있다.

40조원에 이를 것이란 분석도 한다. 엄청난 돈이다.

꼭 필요한 돈은 쓰되, 대신 국가부채.국민부담으로 이어지는 규모를 최소화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국민 세금이 공무원 호주머니 돈은 아니지 않은가.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에 대한 조치도 필수적이다.

엄청난 공적자금이 투입된 은행의 돈을 축낸 부실기업주들이 계속 떵떵거리면서 경영정상화에 걸림돌이 되는 상황을 용인한다면 추가조성은 설득력을 갖지 못할 것이다.

방법에 있어서도 당장 면피하려고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편법만 찾지 말고 솔직히 속사정을 털어놓고 국민과 야당의 협조를 구하는 정공법을 택하는 게 최선의 길이다.

아울러 경제장관이나 고위공직자들의 낙관적 경제인식에도 문제가 있음을 지적코자 한다.

이렇듯 엄청난 문제를 안고 있으면서도 TV 등에 나와서는 여전히 앵무새처럼 "우리 경제는 문제없다" 는 '펀더멘털 낙관론' 만 되풀이해선 국민의 불신감만 가중시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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