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신앙] 그림으로 구도나선 허허당스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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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수행자로서 철저한 수행을 통해 참 생명의 근원에 닿고자, 또 생명은 하나임을 깨닫기 위한 한 방편으로 작품에 몰두합니다. 참선.염불등 다양한 수행방법이 있는데 그림으로써 참선을 하며 나는 내 안의 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

수십만.수백만 동자승을 점과 선으로 사용해 천지만물의 생명의 축제를 형상화해내고 있는 허허당(虛虛堂)스님. 1983년부터 구도의 한 방법으로 하얀 여백의 한지와 붓을 택해 7번의 개인전 가진 허허당 스님의 구도의 그림들이 스위스에서 전시된다.

지난 97년 공평아트센터에서 열린 스님의 개인전을 본 취리히의 갤러리 테제미드와는 오는 5월19일부터 한달간 스님의 작품 32점을 전시하기로 한 것. 74년 열아홉에 해인사로 출가해 향훈(香勳)이란 법명으로 참선수행을 했다.

스님은 한창 수행을 하며 도(道)는 구하고 찾아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비움으로써 찾아오는 것이란 걸 알았다한다. 때마침 꽃과 신록이 피어나는데 이파리 하나하나 합장한 동자승 모습으로 비쳤다.

그때부터 비우고 또 비우자며 이름을 허허당으로 바꾸고 선방을 뛰쳐나와 지리산 자락 벽송사.안국사 등을 전전하며 그림에 몰두했다.

허허당 스님에게 있어 동자승은 점이며 선이며 색 등 바로 그림의 재료다. 그 수많은 동자승들이 절도 짓고 범종과 풍경을 만들고 우담바라의 꽃으로도 피어난다.

이런 스님의 그림을 미술평론가 김춘일씨는 "매일 매일, 또는 수많은 개인들의 수백.수천의 간곡한 기원들이 어느 일순간에, 마치 카드섹션의 형상처럼 그 각각의 개별성을 홀연히 초월해서 화면 전체에 커다랗게 깨우침의 형상으로 드러난다" 고 평했다.

허허당 스님은 지금 경남 산청 율곡사에 머무르고 있다. "가난한 냄새가 나 그 절이 좋다" 는 스님은 또 붓만 챙겨 어느 절로 옮길지 모른다.

계곡에서 거침 없이 발가벗고 목욕하고 너럭바위에 그대로 드러누워 '물건' 을 말린다. 동자 같이 세상 분별 없는 마음 씀씀이로 우주를 하나의 큰 생명 덩어리, 기도하고 환희하는 축제로 붙잡고 있는 것이다.

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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