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 기업따라 찬반 엇갈리는 복수노조 도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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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현대·기아차그룹이 3일 한국경영자총협회를 탈퇴하기로 결정했다. 복수노조 허용과 노조전임자에 대한 임금지급 금지 제도를 둘러싼 갈등 때문이다.

현대·기아차그룹은 “경총은 정부의 노사관계 선진화 방안이 미래의 국가경쟁력을 한 단계 도약시킬 수 있는 사업임에도 경총의 존속을 위한 정치적 입장만 내세우며 역행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현대·기아차그룹은 경총이 두 제도를 내년에 시행하려 하지 않고 노동계와 타협해 또 유예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판단한다. 복수노조는 기업에, 전임자 무임금은 노조에 부담이 되는 사안이다. 그래서 이 둘을 패키지로 묶어 처리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한쪽만 피해 보는 협상은 성사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경총은 한국노총과 복수노조 시행을 3년 유예시키는 데 합의한 뒤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는 내년부터 반드시 시행하자는 식으로 별도 협상 중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복수노조를 유예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음으로써 전임자 무임금까지 유예시키는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고 경총을 비난했다.

경총도 고민이다. 기업의 사정에 따라 주문하는 것이 달라서다. D·H·K·L·S그룹 등은 현대·기아차그룹의 입장에 동조한다. 반면 S·P·L사는 복수노조만큼은 시행을 미루거나 시행해서는 안 된다며 경총에 힘을 보태고 있다. 복수노조·전임자 무임금 문제가 경영계 내부의 갈등으로 비화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다 경영계는 노조가 파업할 때면 어김없이 글로벌 스탠더드를 들어 노조의 행동을 비난했다. 복수노조와 전임자 무임금은 노사관계의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데 경영계도 동의한다. 자칫하면 필요할 때만 글로벌 스탠더드를 내민다는 비난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현대·기아차그룹과 이에 동조하는 기업들이 두 제도의 시행에 애착을 보이는 것은 강성노조를 누그러뜨리고, 과도한 전임자를 줄일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또 다른 노조가 생기면 현재의 강성노조와 경쟁을 할 것으로 본다. 조합원들은 근로조건과 관계없는 사안을 내세워 정치투쟁을 하는 노조를 버리고, 온건노조를 선택해 결국 산업평화에 기여할 것이란 판단을 한다. “복수노조가 되면 더 강경한 노조가 장악할 것”이라는 한국노총 장석춘 위원장의 주장과 정반대다. 건강보험공단처럼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산하 노조가 각각 있는 복수노조 기업에 파업이 거의 없다는 점도 든다. 전임자에게 임금을 주지 않으면 노조의 투쟁비가 확 줄어든다. 스스로 임금을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투쟁비가 줄면 투쟁 성향도 누그러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반면 경총에 동조하는 기업들은 복수노조를 두려워한다. 복수노조가 허용되면 비노조 기업에 노조가 설립될 가능성이 커진다. 협력적인 노사관계가 구축된 회사는 다른 노조가 들어와 이런 기조에 균열을 발생시키지 않을까 두려워한다. 이들 기업은 노조전임자에게 주는 임금은 협력적인 노사관계를 이어가기 위해 지출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복수노조와 전임자 무임금 문제가 어떻게 정리되든 한동안 경영계의 갈등은 계속될 전망이다. 유예된 뒤 또다시 이런 일이 벌어지지 말라는 법도 없다. 두 사안에 대해 어떤 형태로든 정리가 필요한 이유다.

김기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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