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용도 불분명한 학부모회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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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학급마다 학부모회원 28명을 뽑아 3만원씩 모금했다. "

"학부모회비는 학부모회장과 총무밖에 모른다. "

새학기 들어 참교육학부모회 대구지부에 접수된 상담 내용이다. 이같은 상담이 잇따르자 참교육학부모회 대구지부가 19일 대구시교육청에 '학부모회비라는 음성적 모금을 금지하는 지침을 내릴 계획이 없느냐' 고 공개 질의했다.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의 학교발전기금법에 따라 학교발전기금 외의 모금행위는 금지된다.

그런데 일부 학교 학부모회에서 회원 가입 학부모를 대상으로 사용처가 불분명한 돈을 걷는다는 이야기가 자주 들린다.

대구지부 회장 김정금(金正錦.40.여)씨는 "대구시교육청이 2년 전 물의를 일으킨 어머니회를 해체, 학부모들로부터 환영받았다" 며 "학부모회가 과거 어머니회의 구태를 재연하는 것 같다" 고 우려했다.

대구의 한 고교 1학년 학부모 金모(45.여)씨는 "지난달 학부모 총회에 갔다가 10만원을 냈다" 고 말했다. 이날 1학년 학부모회원들이 낸 돈만도 1천여만원에 이른다는 것. 학부모회에 들어야 학교 사정을 알 수 있고 굳이 밉보일 필요가 있느냐는 생각에 가입한다는 게 학부모들의 하소연이다.

이 돈은 일부 임원이 관리하고 수학여행 등 학교행사 뒤치다꺼리에 사용된다는 게 학부모들의 말이다. 학교측은 알고도 모르는 척하는 실정이다.

학부모회비는 학교에 따라 많게는 몇천만원에 이른다. 학교운영위 등에서 어렵게 모아 꼼꼼하게 사용하는 학교발전기금과 비슷한 규모의 돈이 불투명하게 임의적으로 사용되는 것이다.

중학생 자녀를 둔 한 학부모는 "지난해 학부모회비 사용을 두고 학교운영위와 대립을 빚었다" 고 한다.

대구지부 金씨는 "때문에 일부 학교는 학부모회비 모금을 금지시키고 있다" 며 "학부모회비 모금을 금지하든지, 학교발전기금으로 양성화해 운용해야 한다" 고 주장했다.

교육당국은 회비 모금이 학부모들의 자발적인 활동이라며 방관할 게 아니라 이제는 한번쯤 이 제안에 귀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안장원 전국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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