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혜경의 행복한 책읽기] '우연의 음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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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폴 오스터의 '우연의 음악' 은 한편의 섬뜩한 농담 같은 소설이다.

그것은 인간의 삶 속에 도사리고 있는 불가해한 우연의 힘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소설의 끝자락에서 우리가 만나게 되는 것은 우연을 가장한 필연, 바로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보이지 않는 감옥이라는 이름의 현실이다.

'우연의 음악' 은 결국 감옥에 관한 소설이다.

소설 속에서 그 감옥은 미국이기도 하고 돈이기도 하다. 소설의 주인공인 나쉬는 아내가 집을 나가버린 후 알지도 못했던 아버지로부터 거액의 유산을 상속받는다.

나쉬의 삶 속으로 우연히 끼여든 거액의 돈은 그에게 그 돈으로 살 수 있는 만큼의 자유를 준다.

나쉬는 맹목적인 자동차 여행으로 자유를 만끽하지만, 사라지는 돈의 액수만큼 그가 누릴 수 있는 자유 또한 바닥나고 있음을 안다.

그의 인생에서 죽음을 향한 일련의 부조리한 과정의 동반자인 얼치기 도박꾼 잭 포지가 등장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가 잭 포지와 함께 상상을 초월한 거액의 복권 당첨자들의 저택을 찾아가 포커판을 벌인 일, 그 곳에서 판돈을 모두 잃고 빚까지 져 그 저택에 갇히는 일, 그 저택에서 그들이 아무 의미 없는 거대한 벽쌓기 작업에 동원되는 기이한 상황 전체가 사실은 어떤 보이지 않는 필연의 끈에 의해 조정되고 있다는 섬뜩한 느낌이 이 농담 같은 소설을 읽는 내내 나를 따라다녔다.

요컨대 상황은 이렇게 진행되었던 것이다.

거액의 돈이 나쉬의 삶 속으로 굴러들어왔고, 그 돈으로 나쉬는 자유를 샀고, 돈이 바닥나기 시작하자 초조해진 나쉬는 자유를 살 수 있는 더 많은 돈을 위해 포커판으로 뛰어들었고, 마침내 그는 주검이 돼 푸코의 원형감옥을 연상시키는 그 거대하고 기이한 복권 당첨자들의 저택을 벗어나는 것이다.

나쉬의 삶 속으로 굴러들어온 거액의 돈은 결국 나쉬를 죽음으로 이끈 불길한 부적이었던 셈이다.

소설 속에서 다양한 상징적 장치들로 정교하게 맞물려 있는 일련의 과정은 폴 오스터가 작중인물의 입을 빌려 "여긴 미국이어요. 나쉬. 굉장한 자유의 본거지. 기억해요? 우리는 누구나 원하는 대로 뭐든 다 할 수 있어요" 라고 말한 그 미국의 환상을 여지없이 발가벗겨 놓는다.

미국에서 자유라는 이름의 환상은 돈이라는 연료 없이는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는 자동차와도 같은 것이다.

그러니 일확천금을 꿈꾸던 잭 포지와 나쉬가 복권 당첨으로 일확천금한 자들의 저택에 갇힌 채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은 얼마나 아이러니컬한 상황인가.

박혜경<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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