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이시하라의 착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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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일본 도쿄(東京)도 지사가 최근 뱉어낸 말들은 국제적으로 호가 난 극우 돌출분자의 망언(妄言)으로만 치부하고 넘어가기엔 염려스런 구석이 너무 많다.

그는 지난 9일 자위대 기념식에서 재일동포와 대만인을 지칭하는 '제3국인' 을 지목해 "흉악한 범죄가 계속되고 있고 소요사건이 예상된다" 고 말했다. 그리고 "경찰력엔 한계가 있으니 자위대가 치안유지도 수행해주기 바란다" 고 말했다.

재일동포를 범죄인시한 발언에 재일동포는 물론 우리 외교부와 북한까지 반발하고 나선 것은 당연하다.

더구나 자위대법상 도지사는 유사시 총리에게 자위대의 '치안출동' 을 요청할 권한을 갖고 있으니 위험하기 짝이 없는 발언이다. 일본은 오는 7월부터 치안유지 출동 때 그동안 경찰의 보조역할에 그쳤던 자위대를 전면에 내세우기로 확정한 상태다.

그런데도 이시하라는 "내 말이 뭐가 잘못된 것인가" 하며 한술 더 뜨고 있다.

우리는 이시하라가 평소 '난징(南京)대학살은 날조' 라고 주장하던 국수주의자라는 점에서 일본사회의 한 이단자로 여기고 싶지만, 다수의 지지로 수도의 장(長)에 당선된데다 이번 발언이 도쿄도청에 접수된 시민반응 중 40%가 지지를 표했다니 그런 일본의 분위기에 깊은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이시하라의 착각은 재일동포 사회가 일제의 범죄적 식민지지배에서 비롯했다는 역사성을 외면한 데서 출발한다. 간토(關東)대지진 때 일본당국의 묵인 아래 6천명 이상의 재일동포가 참혹하게 살해된 데 대해서도 전혀 반성이 없는 탓이다.

우리는 이시하라 같은 이단자가 도쿄라는 국제도시의 수장이라는 것이 일본과 주변국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일본정부 스스로 외국인 노동자를 적극 받아들일 계획이고, 유엔도 매년 1천만명의 외국인 이민자를 받아들이라고 권고한 판에 이 무슨 시대착오적 망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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