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현대, 남북정상회담 협상 협력 관측 제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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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현대그룹이 남북 정상회담 합의 과정에서 막후 역할을 했으리란 관측이 재계에서 제기됐다.

정부 특사인 박지원 문화관광부 장관이 그동안 접촉한 북한의 송호경 아시아.태평양위원회 부위원장은 현대의 대북창구로 알려진 대표적 인물. 현대는 정주영(鄭周永)명예회장의 방북과 서해안공단 사업을 추진하면서 중국에서 宋부위원장과 자주 만나왔다.

더구나 현대의 대북사업을 추진해 온 핵심인 정몽헌(鄭夢憲)회장과 이익치(李益治) 현대증권 회장이 최근 한달 동안 중국 등에서 보인 행보가 朴장관과 거의 비슷해 정부와 현대와의 교감 가능성을 더욱 높게 하고 있다.

朴장관은 10일 기자회견에서 정몽헌 회장의 역할에 대해 부인하면서도 "여러 채널을 통해 협상을 벌였다" 고 말해 여운을 남겼다.

朴장관은 지난달 15일 김대중(金大中)대통령으로부터 대북 특사를 맡아달라는 요청을 받고 이틀 뒤인 17일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북한의 宋부위원장과 처음 접촉했다.

당시 인사 파문의 주인공이었던 李회장은 이날 오전 상하이로 출국한 뒤 베이징(北京)으로 옮겨 현대의 대북사업과 관련된 일을 보았다고 현대 관계자가 전했다.

李회장은 현대그룹의 대북사업과 관련한 자금조달 업무를 총괄하고 있다.

이 무렵부터 鄭회장의 행보 또한 예사롭지 않았다.

鄭회장은 지난달 5일 金대통령의 유럽순방을 동행한 뒤 미국으로 건너간 것으로 알려졌으나, 17일을 전후해 베이징내 한 호텔에서 李회장과 합류한 것이 다른 그룹 관계자에게 목격되기도 했다.

특히 정상회담 논의가 무르익을 무렵인 지난달 29일 鄭회장과 李회장이 극비리에 중국을 방문했다.

현대 고위 관계자는 이에 대해 "두분이 베이징에서 북한 아태측 인사(송호경 부위원장)를 만나 대북사업 문제를 협의했다" 고 밝혔다.

朴장관이 베이징에서 북한의 宋부위원장을 만나 정상회담 개최에 합의한 지난 8일 鄭회장과 李회장의 행적도 관심사다.

鄭회장은 5일 정주영 명예회장과 함께 일본 도쿄(東京)로 갔다가 7일 베이징으로 이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10일 베이징에서 대한항공 852편을 예약했다 취소하고 아직까지 귀국하지 않고 있다.

李회장은 鄭명예회장의 일본방문을 수행하고 7일 귀국한 뒤 당일 다시 베이징으로 출국했다가 9일 오후 귀국했다.

따라서 북한과 경협을 추진 중인 기업의 인사들은 현대가 정부와 북한의 협상에 상당한 역할을 했거나, 적어도 宋부위원장의 의중을 파악해 정부에 알려주는 일은 했으리라고 관측하고 있다.

김시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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