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세상보기] 꽃들의 비명소리가 들려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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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나에게는 세 개의 특기할 만한 화분이 있다. 그 중 하나는 자스민 화분이다. 오늘 아침에도 나는 그것의 팔을 만져주었다.

가늘디 가는, 잎이 군데군데 떨어져 있는 그것, 누렇게 변색된, 몇 개 남지 않은 잎들…. 지난해 한 화원에서 사가지고 올 때 그것은 얼마나 아름답고 향기가 기가 막혔는지, 보라색과 흰색의 꽃 속에선 푸른 수평선이 출렁거리고 있는 듯했다. 그런데 그 향기를 다 뿜은 날부터 그것은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나는 바람을 쐬지 못해서 그런가 싶어 통풍이 잘 되는 창문 앞으로 그 화분을 들고 가기도 하고, 어느 날은 큰 나무에 가려 햇빛을 못 쐬는 바람에 그런가 싶어 햇빛이 잘 드는 곳으로 그것을 옮겨주기도 했다.

어느 날은 물을 너무 자주 줘서 그런가 싶어 물을 안줘 보기도 하고, 어느 날은 반대로 물을 너무 안줘 그런가 싶어 물을 흠뻑 주기도 하고, 약을 뿌려주기도 하고, 음악을 틀어주기도 하고, 사랑이 부족해서 그런가 싶어 외출에서 돌아오면 제일 먼저 들여다보아주고, 쓰다듬어주고, 밤이면 그것을 한 번 보고야 잠자리에 들기도 했다…. 그러기를 1년여, 나는 그것이 오늘 아침에도 살아 있다는 것을 놀랍게 깨달은 것이다.

나의 노력 이상으로 꽃 그것도 살려고 노력하고 있었던 것이다. 화분집 아저씨가 보고 "병들었습니더. 여기 이것이 벌레구만. 뽑아버리슈. 한 번 그러기 시작하면 살기 힘듭니더…" 한 이후로.

또 하나는 아이비 화분이다. 하긴 화분이랄 것도 없다. 1천원짜리 작은 대나무 바구니에 흙이 조금 담긴 것이다. 그런데 그 아이비가 우리 집 거실 벽을 푸른 이파리로 장식하고 있는 지는 10년이 넘는다.

그것도 '이사' 바람에 두 번이나 벽을 바꿔야 했다. 화분집 아저씨가 보고는 말한다. "야, 이것 봐라. 이렇게 빈약한 흙 위에서 어찌 자라노?" 그 아저씨는 감탄, 감탄했다.

흙을 바꿔주고 싶지만 넝쿨이 하도 넓게 뻗어 그렇게 할 수도 없다. 그러던 언제부터인가 그것에는 하얀 벌레가 끼기 시작했다. 열심히 닦아주곤 했지만 영 없어지지 않는다. 그런데도 벽은 자꾸 푸르러진다.

또 하나는 이름도 모르는 한해살이 꽃풀 화분이다. 나는 그것을 어떤 절의 마당에서 파왔다. 언젠가 그 절에 갔는데 마당에 가득 피어 있는 것이 아주 예뻤다.

그래서 "그것 참 예쁘네요" 했더니 그 절의 마음씨 좋은 스님은 "한 포기 떠가시죠"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래도 돼요?" 그렇게 해서 비닐봉지에 한 포기를 떠왔던 것이다.

집에 오니 거의 죽어 있었다. 버릴까 하다가 아까워 화분에 심고 부엌 창 앞에 놓아두었다. 밖에 있던 것이니, 바람을 많이 쏘여주어야 할 것이라 생각해 거기다 놓은 것이다.

수시로 창문을 열어줄 수 있으니까. 그리고 물을 주고 햇빛이 날 때는 햇빛 앞으로 데리고 가고. 그러던 어느 날 다 죽었던 그 꽃줄기가 일어서기 시작했다.

한밤중에 일어나 커피를 끓이려고 부엌으로 가니 그 풀 꼭대기에 보랏빛 꽃이 피어있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그것은 그 보라빛 꽃이 진 뒤에도 살아 있다. 지난 겨울의 고개도 훌륭히 넘어. 투쟁, 살아있는 것들의 살아남기 위한 투쟁, 그것을 도울 수 있어야 한다.

작은 것들을 살아남게 해야 한다. 그 작은 잎들의 벌레들을 죽여주어야 한다. 세상은 얼마나 작은 것들로 이루어져 있는가. 우리도 실은 얼마나 작디 작은가.

4월에는 그런 생명의 노래가 사방에서 울려퍼지길 기원한다. 소로우의 말을 한 마디 덧붙인다.

"세상에는 매일 보면서도 알아채지 못하고 그냥 지나치는 아름다움이, 그 모양은 물론 색깔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은지!" - '소로우의 노래' 중에서.

강은교 <시인.동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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