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년만의 해후…서울 봉영여중 사제간 뜻깊은 만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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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지난 1일 오전 11시 덕수궁 내 분수대 앞. 1972년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 봉영여중(현재 양천구 목동 소재)에서 사제간의 인연을 맺었던 박청수(朴淸樹.59)선생님과 40여 명의 제자들이 28년 만에 만나 학창시절의 추억을 나눴다.

이날 만남은 당시 국어교사였던 朴씨가 "2000년엔 모두가 40대 중반으로 가정과 일에 얽매여 서로 만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라며 "하지만 만우절인 4월 1일 서로 만날 수 있다면 '말' 의 소중함을 각별히 느낄 것" 이라고 제안해 이뤄졌다.

朴씨는 "약속 시간을 오전 11시로 잡은 것은 모두 주부들이 돼있을 제자들이 집안 일을 끝내고 나올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기 때문" 이라고 덧붙였다.

당시 30대 초의 '미남' 이던 朴씨의 얼굴에는 주름살이 파였고 흰머리도 놀랄 만큼 늘었다.

당시 10대 소녀였던 제자들도 대부분 중.고생 자녀를 둔 어엿한 중년으로 성장했다.

제자들은 "다정다감했던 선생님은 당시 교내에서 인기가 최고였다" "아직도 예전 그대로의 모습" 이라며 각자 가져온 꽃다발을 스승에게 건넸다.

중학교 졸업 뒤 미국으로 이민 떠났던 이정숙(李貞淑.44)씨도 약속을 지키고자 고국을 방문했다.

직장에 휴가계를 내고 대전에서 올라온 김춘옥(金春玉.44)씨는 "선생님이 칠판 위에 '2000년 4월 1일에 만나자' 고 큼지막하게 썼던 것을 생생히 기억한다" 며 "당시엔 2000년이 오리라곤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고 눈물을 글썽였다.

朴교사는 "당시 약속장소에 나타나면 학생들에게 근사한 점심을 사주겠다고 약속했다" 며 "오늘을 위해 그동안 통장을 만들어 3백만원을 저축했다" 며 통장을 내보였다.

하지만 제자들은 "만남의 기회를 만들어준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며 선생님에게 식사 대접을 하고 금 다섯 돈으로 만든 행운의 열쇠를 선물했다.

하재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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