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북한이 움직이고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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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북한이 최근 국제무대에서 매우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눈에 띄게 활발해진 대외활동을 볼 때 북한이 체제 개혁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개방' 을 선택한 것은 확실해 보인다.

북한이 국제사회에 나아가 각국과 국교를 맺고, 다양한 차원에서 교류를 확대하는 일은 기본적으로 우리에게도 도움이 된다. 북의 개방노선 자체를 전쟁위협의 축소와 국제적 질서 편입이라는 의미로 풀이할 수 있다. 우리는 북한의 대외개방 노선이 남북 당국간 대화로 이어져야 한다고 보며, 그 시기는 이르면 이를수록 좋다고 강조한다.

북한은 올해 초 이탈리아와 대사급 외교관계를 맺은 데 이어 캐나다.호주 등과도 수교를 추진 중이고, 필리핀과는 상반기 중 국교 수립이 유력하다. 다음달 4일에는 평양에서 일본과의 수교교섭 본회담이 열릴 예정이다.

북한이 가장 중시하는 대미(對美)외교 분야에서도 지난번 고위급회담 준비회담은 비록 별 성과없이 끝났지만 곧 접촉이 재개될 전망이다.

러시아와 선린조약을 새로 체결했고, 중국과는 정상간 방문외교 문제를 깊숙이 논의 중인 것을 감안하면 북한은 서방세계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여놓는 한편으로 전통적 우방과도 관계를 강화하는 양면전략을 펴는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우리 외교정책도 북한의 활발해진 대외활동이 남북간 화해.협력과 교류, 궁극적으로는 통일기반 조성에 기여하는 선순환(善循環)을 이루도록 촉진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탈리아 총리가 이달 초 자국을 방문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에게 남북대화 중재역을 약속한 데 이어 이탈리아 외무장관이 그제 평양 방문을 마무리하면서 북한측과 '통일지향적인 유익한 북남대화와 협상' 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공동발표문을 낸 것은 바람직한 사태 진전의 한 예로 꼽을 만하다.

물론 북한이 대외활동 강화를 통해 이른바 통미봉남(通美封南) 전략을 다른 지역에도 확대 적용하려 한다는 의심을 해볼 수는 있다. 서해 5도 주변에 일방적으로 통항로(通航路)를 설정한 데서 보듯 남북간 충돌 위협도 여전한 실정이다.

베를린 선언에 대해서도 북한은 우리측에 "실천행동으로 그 의지를 보여달라" (노동신문 논평)고만 주문했을 뿐 구체적인 응답은 내놓지 않은 상태다.

남북 문제에 관한 한 근거없는 낙관론도, 고정관념에 따른 무조건적인 비관론도 금물이다. 주변 4강국을 중심으로 대북정책에서 국제공조를 긴밀히 유지하면서, 국내적으로는 정략(政略)에 휘둘리지 않고 화해.협력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하되 안보태세만은 튼튼히 유지하는 일이 기본이다.

북한도 전제조건을 달아 남북대화를 기피하면서 주변국만 빙빙 돌 게 아니라 과감하게 당국간 대화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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