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에 손벌리는 후보들…지방서도 '원정 공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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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인터넷회사 사장 李모(34)씨는 지난주에만 4명의 총선 후보측 인사를 만났다. 회사 사옥이 위치한 선거구에서 출마하는 후보들의 관계자들이었다.

모 후보의 홍보담당자는 "회사 주변 지역을 강남에 버금가는 새로운 벤처밸리로 개발하고 국고보조를 받아 이 지역 벤처기업의 임대료를 파격적인 수준으로 낮추겠으며 세제 감면도 추진하겠다" 는 공약을 제시하며 은근히 자금지원을 요청했다.

또 다른 후보의 관계자는 "우리 영감(출마자)이 국회에 들어가면 정보과학위원회로 배정될테니 사이좋게 지내면 서로 좋을 것" 이라고 말했다.

李사장은 "이들 가운데 일부는 노골적으로 억대의 돈을 요구했다" 며 "하지만 그럴 만한 여력이 없고 범법행위가 될까 두려워 모두 거절했다" 고 밝혔다.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하는 崔모(35)사장도 최근 한 후보로부터 황당한 제안을 받았다. "당신이 운영하는 온라인 쇼핑몰을 외국의 쇼핑몰 업체나 국내 대기업과 제휴할 수 있도록 하겠다" 는 내용이었다.

이에 崔사장이 "어느 업체와 제휴가 가능하냐" 고 묻자 이 후보측은 회사의 취급 품목과 전혀 관계없는 도서.자동차부품 유통업체들의 이름을 줄줄이 댔다. 그러고나서 '본론' 인 선거자금 지원 얘기를 잊지 않았다.

崔사장은 "최근 새로운 사업을 시작해 자금사정이 좋지 않다고 둘러댔지만 이런 저런 공약들을 덧붙여가며 끈질기게 접촉해와 곤혹스럽다" 고 말했다.

선거자금이 아쉬운 총선 출마자들이 큰 돈을 번 것으로 소문난 벤처업체들에 손을 벌리고 있다.

이들은 지역개발부터 사업상 특혜제공까지 갖가지 약속을 늘어놓고 있지만 거의 실현 가능성이 없는 공약들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의 얘기다.

대부분의 벤처업체들은 이들의 제안을 거절하고 있지만 정치권에 잘못 보였다 혹시나 미움을 살까봐 걱정하고 있다.

인터넷 업체의 朴모(38)이사는 얼마 전 지방에서 출마하는 한 후보 비서의 방문을 받았다. 이 비서는 朴이사에게 "우리 후보의 당선이 확실시되는데 선거자금을 보태주면 경마 인터넷 중계권을 확보해주겠다" 며 유혹했다.

朴이사는 "처음에는 서울출마 후보들이 접촉해왔으나 요즘은 전국적으로 수십여명이 만나자는 제의를 해온다" 고 귀띔했다.

또 다른 벤처기업 사장은 "선거자금을 내달라는 출마자들의 전화가 하루 10여통도 더 온다" 면서 "말도 안되는 공약 들어주기가 지겨워 아예 휴대폰 번호를 바꿔버렸다" 고 말했다.

전진배.우상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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