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후된 가로변 정류소 … 최신식 중앙 정류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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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미아삼거리역 가로변 버스정류소에는 안내대 이외에 아무런 편의시설이 없다(사진 왼쪽). 이곳에서 100여m 떨어진 중앙버스전용차로 정류소에는 의자, 전자안내판 등이 있어 대조적이다. [김도훈 인턴기자]


24일 오후 3시쯤 서울 강북구 미아삼거리역.

초록색 지선버스가 다니는 가로변 버스정류소에서 엄순정(33·주부)씨가 3살 난 딸을 안고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칭얼대는 아이를 안고 어르느라 허리가 아프지만 앉을 곳이 마땅치 않다. 엄씨는 “아이를 데리고 나온 날은 너무 힘들다”고 말했다. 정류소에는 안내표지판 외에 변변한 편의시설이 없다.

의자는 물론 비를 피할 수 있는 가림막도 없다. 엄씨는 “비 오는 날에는 아이를 안고 버스를 타는 것이 번거로워 그냥 택시를 타곤 한다”며 불편을 털어놓는다.

서울시내의 가로변 버스정류소의 시설이 열악하다. 버스 안내판만 달랑 하나 서 있을 뿐 다른 편의시설이 없는 곳이 전체 5539개 가로변 버스정류소의 80%인 4283곳에 이른다. 강북구의 경우 179개의 정류소 중 의자와 가림막 등을 갖춘 승차대는 한 군데에 불과하다. 성북구의 경우 254개 정류소 중 2곳에만 승차대가 설치되어 있다.

미아삼거리역 가로변 버스정류장에서 100여m 떨어져 있는 중앙버스전용차로의 정류소. 깔끔한 의자와 가림막이 있는 승차대에 시민들이 앉아서 기다려 대조적이다. 전자안내판에는 다음 버스가 언제 도착하는지가 나온다. 임선(21·대학생)씨는 “매일 파란 버스(간선버스)와 동네 버스(지선=버스)를 이용하는데 편의시설이 너무 차이 난다”고 말했다.

가로변 버스정류소의 시설이 열악한 것은 3년째 계속되고 있는 소송 때문이다. 서울시와 버스운송조합이 1997년 1월부터 시설업체와 계약을 하고 승차대를 설치해 왔으나 2007년 1월 사업이 전면 중단됐다. 서울시가 신규사업자를 선정하기로 하자 기존 업체가 부당하다며 민사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현재 소송은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서울시 측도 입장이 곤란하다. 서울시 서덕영 운행관리팀장은 “현재로는 우리도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 답답하다”며 “소송이 끝나는 대로 승차대를 최대한 빨리 설치하겠다”고 말했다.

가로변 버스정류소 승차대 설치가 난항을 겪고 있는 데 비해 중앙 정류소에는 편의시설이 늘고 있다. 사람들이 많이 몰려 광고효과가 좋아 민간사업자들이 적극적으로 투자하기 때문이다. 최근 서울시가 발표한 중앙버스정류소의 ‘난로의자 설치’도 민자사업이다. 12월부터 성산로 연대앞 등 13개소의 승차대 위쪽에 전기히터를 설치하겠다는 계획이다. 도로교통시설담당관실 중앙차로팀 변봉섭 팀장은 “중앙버스정류소는 대로 한가운데 설치되고, 확대되는 추세라 2004년부터 부서를 따로 만들어 집중적으로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버스정류소의 시설이 현격하게 차이를 보이는 것에 대해 시민들은 비판적이다. 한승진(32·회사원)씨는 “똑같은 버스정류장인데 이렇게 상황이 달라서 되겠느냐”며 “생색내기 좋은 곳에만 투자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

한국교통연구소 권영종 박사는 “버스정류소 시설은 열악한데 대중교통을 이용하라고 권장하는 것은 모순”이라며 “민자에 맡겨둘 것이 아니라 통합된 관리체계와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기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임주리 기자, 사진=김도훈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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