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사 토론 프로그램… 제작진들 섭외 애먹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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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방송사들이 토론프로그램 출연자 섭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의견이 분분한 이슈 토론에는 각 주장을 대변하는 당사자들이 나란히 참여하는 것이 필수. 과거의 구색맞추기식에서 벗어나 첨예한 의견 대립을 보이는 토론자들을 초청하는 최근의 토론프로그램들이 시청자의 관심을 끌고 있지만 논쟁 당사자들이 토론 상대를 문제삼아 토론 참여를 거부하는 사례가 적지않아 제작진이 고심하고 있다.

'4.13총선 쟁점' 을 다루려던 지난주 MBC '정운영의 100분 토론' 에 민주당측이 한나라당측 토론자를 문제삼아 불참을 통보한 것이 그 단적인 예.

'…100분 토론' 은 지난해 10월 첫방송 '언론탄압인가, 개인비리인가' 편에서 민주당 신기남 의원의 요구 때문에 중앙일보측 토론자가 출연하지 못하는 일을 겪은 뒤 '출연자의 일방적 불참이 주제선정이나 다른 토론자 구성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된다' 는 프로그램 운영규칙까지 마련했지만 이번에 다시 출연자 문제로 프로그램을 방송하지 못하는 사태까지 겪었다.

'…100분 토론' 의 이선호 부장은 "과거 방송법 관련 대토론회 때도 여당의원이 특정 토론자가 나오면 불참하겠다고 해 제작진이 애를 먹었다" 면서 "힘있는 집단일수록 '나가봐야 득이 될 것 없다' 면서 토론 자체를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100분 토론' 은 '프로야구 선수협의회 파동' 을 다뤘을 때도 구단측이 끝내 참여를 거부, 대신 KBO 사무차장을 섭외하기도 했다.

이같은 사정은 KBS '생방송 심야토론' 이나 '길종섭의 쟁점토론' 도 마찬가지. 특히 정치인들은 토론 프로그램 제작진들에게 가장 섭외가 까다로운 토론자로 꼽힌다.

'…쟁점토론' 의 손재경 차장은 " '격이 안맞는다' 면서 상대편 토론자에 불만을 표시하는 경우는 부지기수" 라고 말한다.

'…심야토론' 의 남성우 주간은 "같은 국회의원이라도 3선 이상 중진들은 절대 초선 의원과는 토론에 나서려 하지 않는 식이다" 고 설명한다.

정치인 섭외는 총선을 앞둔 요즘은 더욱 민감한 부분으로 부각되고 있다.

'…심야토론' 의 경우 아예 섭외단계에서부터 정책위의장.대변인 등 출연자의 직함을 못박는다.

최근에는 각 당 '정책위의장' 을 한 자리에 모았는데 한 당이 '정책실장' 을 토론자로 예정해 제작진이 노심초사하다 마침 토론 당일 아침에 '정책위의장' 으로 발령이 나 안도하기도 했다.

이처럼 섭외과정이 까탈스럽기는 해도 '말대결' 에 능한 정치인 출연은 시청률에 무시못할 영향을 준다.

'…심야토론' 의 남성우 주간은 "정책위의장들이 출연한 날 시청률이 8% 정도 나왔는데, 그 다음에 대변인들이 출연하자 10%대를 넘어섰고, 사안을 좀 덜 논쟁적으로 접근하자는 뜻에서 학자들이 출연한 날은 4%대로 떨어졌다" 고 최근의 시청률 동향을 소개한다.

'…100분 토론' 의 이선호 부장은 "우리 사회 최대의 현안인 정치관련 주제를 외면할 수 없지만 안 나오겠다는 토론자들을 강제로 데려다 앉힐 수는 없는 일" 이라면서 "당사자의 불참으로 토론 자체가 무산되는 우리 사회의 토론문화가 바뀌기를 바랄 뿐" 이라고 말했다.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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