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우의 Market Watch]올해는 외국인 덕에 버텼지만 내년 시장 쉽지 않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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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호 26면

올 한 해 시중 자금 흐름의 특징을 정리하면 ‘주식에서 채권으로’와 ‘투자에서 저축으로’다.주가가 저점 대비 70% 넘게 올랐지만 주식형 펀드 설정액은 줄고 반대로 채권형 펀드 설정액은 늘어났다. 간접 투자가 준 만큼 직접 투자가 늘어난 것도 아니다. 투자자 예탁금이 연초 대비 5조원가량 증가했지만 신용잔액이 3조원 이상 늘어난 것을 감안하면 큰 변화가 아니다. 현찰로 가지고 있던 것을 외상으로 돌린 데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 외국인 매수와 기관 매도의 차이를 감안하면 직접 투자에서도 돈이 들어오기보다 빠져나갔다고 볼 수 있다.

반면 은행 쪽으로는 자금이 활발하게 유입됐다. 저축성 예금이 560조원에서 610조원으로 50조원 이상 늘었고, 대출도 885조원에서 960조원으로 증가했다. 은행이 특판 예금 등을 통해 시중 유동성을 흡수하고 이를 재원으로 부동산 담보대출을 늘리는 구조가 계속된 것이다.

앞으로 이런 자금 흐름이 바뀔 수 있을까?
이 문제에 답하기 위해선 왜 주식형 펀드에서 돈이 빠져나가는지 고민해 봐야 한다. 우선 우리나라 금융 자산 구조상 주식형 펀드 잔액이 너무 많다. 2005년 1월 주식형 펀드 규모는 7조5000억원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던 것이 2008년 8월에 144조원으로 늘어나는데 주가가 오른 부분을 감안해도 3년 반 만에 전체 잔액이 19배나 늘어난 것은 유래가 없는 일이었다.

채권형과 비교해 봐도 주식형 펀드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현재 주식과 채권의 시가총액은 1000조원로 비슷하지만 채권형 펀드 규모는 40조원도 되지 않는다. 40조원이라는 것은 기관 투자자를 제외하고 채권형 펀드에 투자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얘기가 된다.

은행 중심의 금융 관행이 계속되고 있는 점도 현재 자금 흐름이 유지되는 이유다. 어떤 나라든 금융 관행은 천천히 변한다. 우리는 전통적으로 은행 중심의 금융 관행을 유지해 왔는데 지난 2~3년은 이런 관행이 요동을 치면서 자금이 자본시장으로 과도하게 몰리는 시기였다. 지금은 이 과정이 끝나고 투자로 쏠렸던 돈이 조금씩 저축으로 돌아오고 있다.

자금 흐름이 현재 같은 형태로 계속된다면 시장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까? 올해는 외국인이 국내 투자자의 이탈을 보완하고도 남을 정도로 매수를 했기 때문에 별 탈 없이 지나갔다. 그러나 앞으로는 간단치 않을 것 같다. 국내 투자자들이 시장에서 이탈하는 것은 다분히 구조적인 반면 외국인 매수는 순환적인 형태에 그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자금 이탈이 점진적으로 이뤄지면 시장이 이를 흡수하겠지만 갑자기 커지면 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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