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 신작 '아가'속의 여성관 논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이문열씨가 최근 내놓은 전작 장편소설 '아가(雅歌)' 에 평론가들의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1997년 발표한 '선택' 처럼 여성과 페미니즘 문학에 대해 노골적인 힐난을 한 것은 아니지만 작가의 남성중심.가부장적.과거회귀적 시각이 그대로 녹아 있다는 지적이다.

'아가' 는 극심한 육체적.정신적 장애아로 태어난 여자(당편이)가 시골 마을에서 살아가는 얘기. 6.25전 누군가에 의해 버려진 당편이는 녹동어른이라는 지주의 보살핌을 받으며 공동체 생활 속에 편입됐으나 근대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공동체가 해체되자 설 자리를 잃고 보호시설로 가게된다.

이런 작품의 구도에 대해 가장 비판적인 이들이 여성평론가들. 평론가 고미숙씨는 "결국은 과거의 남성중심적이고 가부장적인 질서로 되돌아가야한다는 주장이다. 이는 불가능하다. 그런 향수는 자기위안에 불과하다" 고 주장한다.

고씨는 또 "연륜을 더해 가면서 작가들이 세상을 더욱 폭넓게 보는 노력이 필요한데, 이씨의 경우 너무 과거에 매여있고 비슷한 얘기를 반복해 점점 작품의 극적 긴장감을 잃어가고 있어 아쉽다" 고 말했다.

평론가 최혜실씨는 "당편이를 녹동어른이 거두어들이는 설정은 불구여성을 통해 가부장의 시혜를 부각시키는 이씨 특유의 남성중심 시각과 여성비하(卑下)" 라고 작가의 여성관을 비판했다.

최씨는 "이씨가 제기하고 있는 근대화 과정의 인간성.정(情)의 상실은 맞는 얘기다. 그러나 그것을 두려워하고 피하기 보다 현실을 직시하고 적극적으로 새로운 문학을 모색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이씨는 "지난번 '선택' 에서 불거졌던 여성관에 대한 논란을 피하기 위해 상당히 의식하며 썼다. 일부러 하고싶은 얘기나 가치판단을 삼갔고, 주인공도 '선택' 과 정반대로 하층의 불완전한 여성을 모델로 삼았다. 페미니즘적인 문제와는 무관한 작품이다" 고 말했다.

이씨가 논란의 소지를 의식한 흔적은 있다. 당편이를 녹동어른이 집안으로 들이는 장면 뒤에 작가는 이렇게 서술하고 있다.

녹동어른이 그렇게 당편이를 받아들인 일을 소상히 얘기하는 것은 자칫 그 어른이 누렸던 옛 체제와 질서의 관대함을 과장해 드러내는 것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그리하여 심하게는 몰락해 버린 시대에 대한 어쭙잖은 향수와 동경으로 의심받거나, 있지도 않은 과거의 이상화로 몰릴 수도 있다.

작가는 이런 설정이 고향이라는 공동체의 특성을 설명하기위한 장치임을 강조한다. 비판을 예상해 소설 속에서 '그런 취지가 아님' 을 언급하고 나선 것이다.

평론가 김명인씨는 이런 점을 비판한다. 김씨는 "작가는 누구나 작품을 통해 자기 주장을 한다. 그런데 이씨는 점점 자기 주장을 노골적으로 하고 있다.

이씨의 자기방어는 공격적 글쓰기의 또다른 모습에 불과하다" 고 지적했다. 이씨가 80년대에는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차이에서 변혁세력들을 공격했다면, 최근에는 보수적 여성관을 통해 페미니즘을 공격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씨는 "그런 차이와 논란이 새로운 것을 생산해내는 방식이면 바람직하다. 그러나 이씨는 너무 자기세계를 고집하고 있다" 고 주장했다.

반면 평론가 하응백씨는 "이씨는 부모, '선택' 에서 할머니에 이어 고향마을 불구여성 얘기까지 나름의 일관된 시각으로 써왔다. 어떤 이데올로기나 목적의식을 떠나 작가가 자기세계를 굳혀가는 과정이라고 봐야한다" 고 평가했다.

오병상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