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민심 현지 르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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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요즘 대구.경북(TK) 유권자들은 선거에 대해 심드렁하다. 마음에 드는 정당이 없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공천파문 이후 민주국민당이 생겨났고 22일에는 대구지역 합동 창당대회까지 했지만 이들에 대한 시선도 아직 냉랭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못마땅하긴 하지만 어떻게 하겠느냐" 는 한나라당의 대안부재론(代案不在論)이 먹히는 분위기다.

◇ 쌓이는 불만〓여야 모두에 대해 불만이 누적되고 있다.

22일 대구에서 만난 문병목(회사원.45.내당동)씨는 한나라당 공천파문에 대해 "본래 김윤환 의원을 좋아했던 것은 아니지만 이회창 총재의 오늘을 만들어준 사람을 저렇게 내쫓는 걸 보니 마음이 안좋다" 고 했다.

택시기사 朴모(45)씨는 "李총재는 의리를 모르는 사람" 이라고 혹평했다. 바닥권인 지역경제에 대한 불만도 적지 않았다.

23일 오전 대구공항 앞 대형 선전탑에 적힌 '밀라노 프로젝트' 얘기를 식당에서 꺼내자 마침 식사 중이던 중소기업인 孫모(54.고철처리업)씨가 대뜸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정부가 대구를 이탈리아 밀라노와 같은 세계적인 섬유도시로 만들 거라고 선전하는 건데 그야말로 말로만 하는 소리" 라며 "지난 2년 동안 우리가 피부로 느끼는 것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고 말했다.

경북 칠곡의 曺모(52.염색업)씨는 "1997년 대선 때 김대중 후보가 위천산업공단을 금방이라도 설치해줄 것처럼 공약하더니만 지금까지도 보류상태" 라며 "다른 지역은 IMF를 벗어났는지 모르지만 이곳은 아직도 어렵다" 고 말했다.

◇ 대안부재 정서〓그러나 한나라당을 비판하는 사람들도 대부분 "대안이 없다" 고 했다.

대구 서문시장 입구에서 K상회 문을 열던 20대 청년은 "썩 내키지는 않지만 한나라당에 찍어야지예" 라고 했다. 예천에서 만난 토박이 30대 택시기사도, 안동의 40대 식당 여종업원도 "정서상으로 한나라당말고는 찍을 데가 없다" 고 말했다.

경북 경산의 琴모(60.자영업)씨는 "97년 대선 때 이인제씨가 나와 표를 갈라먹고 JP가 DJ에 붙는 바람에 정권이 넘어갔다" 며 "민국당을 찍으면 민주당을 도와주는 꼴이 된다" 고 주장했다.

민국당이 김영삼(金泳三)전 대통령의 지지를 얻으려고 움직이는 것도 이 지역에서는 못마땅하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민국당 지지세는 저조한 상황이다.

◇ 표로 연결되지 않는 DJ 업적〓젊은층.지식인층을 중심으로 김대중 대통령을 높게 평가하는 분위기도 있었다. 20대 회사원 장재혁(대구 달서구)씨는 "金대통령은 잘하고 있다" 며 "금융개혁을 통한 IMF 위기 극복과 햇볕정책 등이 마음에 든다" 고 말했다.

2년 전부터 이 지역에 파견돼 근무 중인 고위공무원 K씨는 "각급 기관장.대학교수 등 유지들 사이에는 지역개발을 위해서라도 여당과의 통로는 반드시 마련돼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다" 며 "DJ에 대한 반감이 많이 줄어들었다" 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기류가 민주당 지지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택시기사 김희문(45)씨는 최근 재개된 병역비리 수사를 예로 들며 "민주당은 또 과거 일을 들춰내고 있다" 고 비판한 뒤 "金대통령은 평가하지만 민주당은 아무래도 정이 안간다" 고 말했다.

대구〓김정욱.김정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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