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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을 팔려면 눈을 마주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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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그렇다고 그의 생각이 바뀐 건 아니었다. 아니, 대통령을 하며 더 확신에 찬 듯하다. 근래 “대통령의 양심상 그대로 하기 어렵다”고 토로한 일도 있다. 청와대와 부처, 부처와 국회 사이를 무수히 오가는 공무원들을 봤을 거다. 긴급관계장관회의를 소집한 뒤 장관들이 도착하길 기다리며 “세종시에선 한두 시간 걸릴 텐데 ‘긴급’이 아니겠군”이란 생각이 스쳤을 수도 있다. 예상 외로 빨리 통일수도에 대해 고심할 날이 올 거란 전망을 했을 법도 하다.

어쨌든 그가 드디어 오늘 입을 연다. 비로소 공개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밝힌다. ‘약속’을 지킬 수 없는 까닭을 설명하고 ‘사과’도 한다고 한다.

사실 그가 뒤로 빠져 있는 사이 세종시 논란은 사실상 해결이 불가능한 난제가 됐다. 수정안의 국회 통과를 장담하기도 어려워졌다. 설령 박근혜 전 대표가 소극적인 반대에 머문다 해도 그렇다. 야당이 실력 저지할 게 뻔해서다. 내년 6·2 지방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물리적 충돌은 정치적 자살 행위일 수 있다.

이 대통령이 나선다고 이런 상황이 당장 달라지진 않을 거다. 그러기엔 그가 너무 주저했다. 하지만 왜 이제 나서느냐고 비판만 하고 있기엔 시기가 엄중하다. 지금대로라면 2012년 또한 암울할 것이기 때문이다. 관공서만 덩그렇게 들어선 세종시를 떠올려보라. 900여만 평의 ‘공터’를 원망할 충청권과, 10여 년을 정치구도 덕분에 질주한 충청권을 향한 타 지역의 박탈감은 또 어떻겠는가. 이 대통령이 그랬듯, 차기 주자들도 소신과 다른 무수한 ‘약속’을 해야 할 거다. 새만금이 그런 경우였다. 결과적으로 네 명의 대통령이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한 셈이었다.

지금 이 순간, 누구보다 그 부담과 고통을 절절히 느끼는 이가 이 대통령 아닌가. 후임자에게 뻔히 알면서 부담과 고통을 지우는 건 무책임한 일이다. 그래서 “국회에서 안 받아들이면 어쩔 수 없는 게 아닌가”란 선에서 안주하지 않길 바란다.

사회적 합의란 험난한 목표를 향해 갈 그에게 두 사람의 말을 전하고 싶다.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은 눈이 마주쳐야 한다.” 고교생 노점상이던 그의 머리를 쥐어박으며 어머니가 건넨 비법이다. 당당하게 자신의 일을 하란 거다. 또 마주 봐야 상대방의 심리를 알 수 있고, 그래야 마음을 살 수 있다는 뜻일 게다. “정치인이란 토의와 양보를 할 줄 알아야 정략적 운신의 폭이 넓어진다는 걸 아는 사람이다. 상대편으로 하여금 패자로 느끼지 않도록 하는 게 승자가 되는 최상의 방법이다”란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의 말과도 과히 다르지 않은 얘기다.

고정애 정치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