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업협상 진행과정] 서두른 한국…중국은 '만만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한국과 중국의 어업협상은 1992년 양국 수교를 계기로 93년말부터 시작됐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우리 수역에서 조업을 많이 하고 있는 중국측은 협정 체결이 늦을수록 좋다는 판단에서 '만만디' 작전으로 일관, 협상은 지지부진했다.

협상이 본격화된 것은 김대중(金大中) 정부 출범 이후. 더 이상 끌다가는 우리만 손해라는 인식으로 우리측이 적극적으로 나선 것이다.

특히 1998년 11월 金대통령의 중국방문을 앞두고 정부는 협상에 박차를 가했고, 그 결과 어업협정 양해각서의 가서명까지 이어졌다. 이 때문에 성과 자체를 과시하기 위해 너무 서둘렀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당시 주무장관은 김선길(金善吉) 해양수산부장관과 홍순영(洪淳瑛) 외교통상부장관이며, 협상수석대표는 신정승 외교부 아태국 심의관. 가서명 때 중국이 우리측 서해안 특정금지수역을 지키고 우리는 중국 양쯔(揚子)강 연안에서 연간 2~3개월간만 조업을 규제받는 휴어구.보호구제도를 지키기로 구두 합의했다는 게 외교부와 해양부의 주장이다.

그러나 중국은 자국 어민의 반발을 우려했고 우리측은 북한을 의식해 양해각서에는 두 수역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을 '상대국 국내법 준수' 라는 불명확한 문구에 담았다.

해양부가 만든 협상 당시 회의록에도 중국측이 휴어구.보호구제도에 대해 우리측에 대해 설명한 대목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 회의록은 법률적 효력이 없다.

가서명때는 잠잠했던 양쯔강 연안 조업금지수역 문제가 불거진 것은 99년 4월 2차 어업공동위 준비실무회의에서였다.

양국 과장급이 참석하는 극히 실무적인 회의에서 중국측이 이 문제를 들고 나온 것. 중국측 주장에 대해 우리측은 가서명 이후인 99년 3월에 제정된 수역이어서 무효라고 맞받아쳤다.

이에 중국측은 92년에 제정된 법을 재정비한 것뿐이라고 반박했다. 우리측은 확인결과 92년법은 이미 사문화된 것이며, 그 법이 규정한 수역의 범위도 훨씬 적다는 점을 지적했다는 것이 해양부관계자의 설명이다.

그러나 중국이 우리측을 속이고 '딴소리' 를 하는 것이든, 우리측이 상대법령 확인을 꼼꼼히 하지 못한 것이든, 문제의 발단은 양해각서가 치밀하게 작성되지 못한 점에 있다는 지적이다.

이재훈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