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또 전문성 결여된 어업 외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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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이른바 '쌍끌이 어업 파문' 으로 호된 곤욕을 치른 한.일 어업협정 재협상 결과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채 가시기도 전에 이번엔 한.중 어업협상 전개 과정이 도마에 올랐다.

우리 협상팀이 중국측 전략이나 자료에 대한 치밀한 검토.대비도 없이 양해각서에 가서명한 탓에 황금어장인 양쯔(揚子)강 하구 수역에 대한 우리 어민의 조업권을 빼앗길 가능성이 커졌다는 것이다.

때마침 선거철이라 여야 정당들은 이 문제를 놓고 "앞으로 협상 과정에서 해결할 문제" 라고 정부를 두둔하거나 "한.일 어업협정에 이은 또다른 실수로 수백만 어민의 생존권이 위협받게 됐다" 고 비판하고 나섰다. 우리는 이런 정치적 공방과 거리를 두려는 입장이지만 주무부서인 외교통상부와 해양수산부에는 몇마디 질책과 충고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정부 당국은 지난 한.일 어업협정 재협상 과정을 지켜보면서 국민이 느낀 우리 '어업 외교' 수준에 대한 불신.허탈감이 얼마나 광범위한지를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재작년 11월 양해각서를 체결할 당시 중국측이 관련 법규를 새로 정비할 속셈이었던 것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데 대해서는 설명을 생략한 채 무조건 보도내용에 대해 '전혀 근거가 없다' 고 부인으로 일관하는 것이다.

문제의 양쯔강 하구 수역 조업권만 해도 외교부측은 "중국이 구두합의한 것을 번복했다" 고 문제를 협상 상대 탓으로 돌리고 있지만 나중에 딴소리 하지 못하도록 못박아 두는 것이야말로 협상력이자 외교력의 몫이 아닌가.

양해각서의 '연안국이 현재 시행하고 있는 어업에 관한 법령을 존중하고' 라는 문구를 양국이 서로 다르게 해석하는 데 대한 정부측 해명도 뒤집어보면 제대로 따져보지 않은 채 서명부터 한 탓이라는 비판을 받을 소지가 충분하다. 게다가 당국은 협상 진행과정을 지나치게 쉬쉬하려고만 했다.

한.중 어업협상은 일본과 협상할 때와 달리 중국은 되도록 체결을 늦추려는 입장이고 우리는 그 반대여서 근본적인 어려움을 안고 있기는 하다.

북한과 인접한 서해5도 주변 수역을 어떻게 처리하느냐는 민감한 안보문제까지 걸려 있다는 점도 이해한다.

그러나 국민의 바람은 '제2의 쌍끌이 파문' 같은 불상사가 중국과의 협상에서는 되풀이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의 경우 어업협상에 앞서 전문성을 갖춘 실무자들이 현장답사를 통해 정확한 자료를 확보해 협상력을 높이고 있으며, 심지어 일부러 해당국 언어를 공부하는 경우까지 있다고 한다.

아직 협상이 진행 중인 만큼 이제부터라도 다시는 뒷말이 나오지 않게끔 해야 하며, 특히 양쯔강 하구 조업권만큼은 반드시 확보하는 협상력을 발휘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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