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총선보기] 낙선운동 日도 큰 관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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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뿌리깊은 지역주의' '폭로전 치열한 싸움' '각당, 지지율 저조' …. 한국의 총선을 보도한 신문기사의 제목들이다.

그러나 올해가 아니라 모두 4년전의 기사제목이다. 그동안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을 보면 놀랍다. 민주국민당의 창당에 따라 YS의 동향이 주목받고 있는 것을 보면 등장인물까지 비슷해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수십년 변치 않는 것이 지역감정에 관한 기사다. 최근에는 거의 매일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정치인의 언동이 계속되고 있다. 유권자의 결속력을 높여 득표로 연결시키려는 의도일 것이다.

한국에서 일하는 일본인 사업가도 이 나라의 '만성병' 이라 불릴만한 지역대립을 잘 알고 있다. "아무리 중요한 상담(商談)이라도 ○○도 사람에게는 △△도 사람을 소개하지 않는다" 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쓸데없는 참견일지 모르나 외국인들의 경제활동에서조차 장벽이 되고, 뜻하지 않은 이유로 한국인들이 좋은 거래를 놓치고 있는 지역감정의 현실을 한국의 정치인들은 뼈저리게 인식해야 할 것이다.

일본에서도 선거 때만 되면 "당선되면 도로를 고치겠다" 는 등 '토목선거공약' 으로 환심을 사려는 정치인들이 많다. 이런 정치인들은 예외없이 정책능력이 떨어지는 후보들이다.

한국 정치인들의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발언은 바꿔 들으면 "나는 정책으로는 승부를 걸 자신이 없습니다" 고 자백하고 있는 것과 같다. 한편 한국의 총선과정에서는 전에 없던 새로운 움직임도 나오고 있다. 시민단체들의 낙천.낙선운동이다.

올들어 일본의 주요 언론들은 빠짐없이 낙선운동을 취재해왔다. 일본 언론이 낙선운동에 주목하고 있는 이유는 크게 두가지인 것 같다.

하나는 유권자의 목소리가 점차 세지고 있다는데 대한 통쾌함이다. 일본에서도 총선이 다가오고 있지만 정치와 시민의 거리가 멀어진 까닭에 다수 주민의 목소리라 할지라도 그다지 정치에 반영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시민단체에 대한 일종의 선망이 담겨 있는 것이다. 또다른 하나는 이같은 새로운 운동이 전혀 '한국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한국에 대해 군사정권시대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품고 있는 사람이 적지 않다. 권력자가 절대적인 힘을 갖고 있다고 생각되는 한국에서 '힘없어 보이는 시민단체가 정치인을 심사한다' 는 것은 의외의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이번 총선에서는 큰 쟁점들을 그다지 발견할 수 없다. 하지만 역대 어느 선거보다 큰 의미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시민단체의 운동을 전적으로 정당화할 정도의 정보를 갖고 있지 않지만 정말로 유권자들이 스스로의 손으로 나라를 만들어나갈 수 있을지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고 본다.

민주화의 내실을 다지면 국제적인 신용으로도 이어져 경제에도 좋은 영향을 줄 것이다.

한국에는 미래를 숙고할 시간이 많이 남아있지 않다. 외환위기.경제위기를 겪을 때는 국가 존망의 위기로까지 몰렸다. 하지만 정치도 경제도 "이제 문제없다" 고 할 만큼 안정을 찾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경제는 수치상으로 회복기조에 있지만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국민소득격차가 벌어지고 있고 과소비도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일본의 금융기관들은 지난해부터 서울지점을 점차 축소하고 있는 추세다. 그것은 장래에 대한 불안감의 반영에 다름 아니다.

외국인의 감상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르나 언제까지 '나라안' 의 감정적 논쟁에 휩싸여 있을 것인지, 더이상 이 나라에 그럴 여유가 있는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보았으면 한다.

하코다 테츠야 <아사히신문 서울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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