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나라 빚부터 갚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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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재정적자가 지금 같이 계속 늘면 앞으로 14년 이내에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이를지 모른다는 조세연구원의 경고는 충격적이다.

물론 이론적으로 그렇다는 것이고, 연구원 개인 의견으로 과대해석된 면도 없지 않다. 이에 비해 정부는 최근 세금이 잘 걷히고 있고, 또 적극적으로 빚갚기에 나설 계획이라 재정수지가 예정보다 2년여 빠른 2002년이면 균형을 이룰 것이라고 지나치게 낙관하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좋게 봐도 우리 재정 상태는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외환위기를 계기로 공공.금융부문 구조조정 등에 엄청난 돈이 들어가면서 정부 부채가 급증, 공식 집계만도 1999년 말 현재 1백11조8천억원에 달했다.

이는 국내총생산(GDP)의 23% 수준이다. 올해 말이면 부채가 1백30조원으로 늘고, 허리띠를 아무리 졸라매도 앞으로 몇년간은 적자가 더 늘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국민연금 정부 보증 등을 합치면 실제 부채는 이미 2백조원 수준이란 주장도 있고, 심지어 공적자금 추가 투입분까지 감안하면 4백조원에 이른다는 논리를 펴는 쪽도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불구하고 정부.여당은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빚 문제 해결에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서도 모자랄 판에 '문제 없다' 는 말만 되풀이한다.

한술 더 떠 지금도 엄청난 돈이 드는 각종 공약을 무더기로 쏟아내고 있다. 당장 올해만 해도 금융부문에 몇십조가 더 들지 모를 판인데 정부는 하루가 멀다 하고 세금 깎아주는 정책만 내놓고 있다.

농어민 부채 탕감에는 여야가 경쟁적이다. 새로운 세원(稅源)발굴에 대한 아이디어도 없이 그나마 더 걷히는 세금을 복지에 쓰겠다면서 무슨 재주로 빚을 줄이겠다는 건가.

과도한 빚은 당대는 물론 자손 대대로 두고두고 부담이 된다. 서민에게도 도움이 안될 뿐 아니라 실물경제 활동에도 걸림돌이 된다. 조세연구원에 따르면 현 부채만도 경제성장률을 5.7% 잠식하는 요인이 된다고 한다.

이제 국가 대계(大計)차원에서 재정적자.국가부채 해소에 적극 나서야 할 때다. 여기엔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 '표' 를 겨냥한 선심성 복지를 위한 추경 편성은 그만두고, 세계잉여금(歲計剩餘金)을 우선적으로 부채 상환에 쓰는 특별법을 제정하는 등 특단의 조치를 내놓아야 한다.

예산은 한푼이라도 낭비되지 않게 철저히 따져야 한다. 불로.탈루소득에 대한 철저한 추적과 부의 편법 세습에 대한 감시, 그리고 새로운 세원 발굴 등을 통하면 서민에게 부담을 안주면서 세수를 늘릴 수 있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부채를 이대로 방치하다간 언제 '돌이킬 수 없는 상황' 에 직면할지 모른다. 그런 상황이 오기 전에 빚부터 갚는 노력을 최우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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