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앞두고 경제정책 '오락가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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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원유값이 뛰고 외국인 주식투자자금이 몰려오는 등 대외 경제변수가 급변하면서 정부가 경제정책의 중심을 잡지 못한 채 갈팡질팡하고 있다.

환율과 금리, 물가와 무역수지 등 주요 거시지표들을 모두 좋게 끌고가려다 보니 즉흥적 대응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총선이 다가오면서 정치권의 입김에 따라 정책방향이 갑자기 뒤집히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 유가 대책〓정부는 지난 8일 국제유가가 급등하자 엄낙용(嚴洛鎔)재정경제부 차관 주재로 긴급대책회의를 가졌다.

회의를 마친 뒤 嚴차관은 "유가 급등은 단기에 그쳐 성장.물가.국제수지 등 경제운용의 기본틀을 흔드는 일은 없을 것" 이라며 "앞으로 국제유가 상승분은 국내 가격에 반영해 나가겠다" 고 밝혔다.

그러나 이럴 경우 다음달부터 국내 유가가 오르게 될 것이란 보도가 나가기 시작하자 정부는 불과 몇시간 만에 말을 바꿨다.

"관련 세금인하, 정부 비축유의 민간 대여 등 가능한 조치들을 동원해 국내 유가는 현 수준을 유지하겠다" 고 발표한 것이다.

이날 혼선은 정부가 에너지절약을 위해 앞으로는 국제유가 상승분을 국내에 그대로 반영하겠다는 원칙을 세워놨다가 물가를 걱정한 정치권의 입김 때문에 흔들린 것이라는 해석을 낳고 있다.

한편 이날 대책회의에서는 에너지경제연구원이 "하반기 이후 유가가 안정되더라도 연평균 배럴당 25달러 안팎의 고유가 상황은 지속될 전망" 이라는 분석자료를 냈지만 정부에서 "지나치게 비관적인 분석" 이라며 자료를 회수하는 해프닝을 벌이기도 했다.

◇ 환율 대책〓재경부 고위관계자는 지난 7일 외국인 주식투자자금의 대거 유입으로 원화환율이 달러당 1천1백10원대까지 급락하자 "조만간 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을 1조원어치 추가 발행해 외환시장에 개입하겠다" 고 밝혔다.

그러나 다음날 재경부는 그럴 계획이 없다고 번복했다. 대규모 외평채 발행 소식이 전해지면서 회사채 금리가 다시 10%선에 육박하는 등 금리가 뛰었기 때문이다.

2월 무역수지를 월말 밀어내기 수출로 흑자로 만든 것도 환율을 끌어내리는 작용(원화가치 상승)을 했다.

이 과정에서 정부의 대응은 무역흑자 유도→외평채 발행으로 환율 안정→금리 안정을 위해 외평채 발행 취소 등으로 오락가락했다.

◇ 전문가 진단〓박원암 홍익대 교수는 "대외 경제변수는 불가항력적인 측면이 강해 정책대응에는 어차피 버릴 것은 버리는 선택이 필요하다" 며 "정부는 모든 문제를 풀 수 있다는 막연한 낙관론을 제시하기보다는 어려운 상황을 있는 그대로 공개하면서 정책방향을 잡아나가야 한다" 고 강조했다.

朴교수는 "특히 최근에는 선거 때문에 정부가 정치권의 눈치를 보는 것 같다" 면서 "실상을 자꾸 덮어두면서 정책대응을 소홀히 하면 국제 투기자본의 공격을 자초하는 등 사태를 더욱 어렵게 할 뿐" 이라고 지적했다.

홍순영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정부는 임기응변적 대응보다는 중심을 잡고 과제별로 순차적으로 문제를 풀어나가는 자세가 요구된다" 고 주문했다.

김광기.홍병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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