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여야 한목소리 낸 행정개편 … 비결은 ‘당론 없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현 시점에서 18대 국회 두 번째 정기국회의 시계(視界)는 ‘제로’다. 4대 강 사업과 세종시를 둘러싸고 여야(또는 여여)는 같은 내용만 반복재생 중이다. 지켜보는 기자들 사이에서 “안 봐도 쓸 수 있다”는 푸념이 나올 정도다. 이런 국회에서 예외가 있다. 국회 행정구역개편특위가 마련 중인 행정체제개편 기본법안이 그것이다. 특위는 최근 대통령 직속 추진기구를 꾸려 행정체제 통합계획안을 마련토록 하는 등 큰 골격에 합의했다. <본지 11월 23일자 1면> 여야 원내대표도 “내년 2월까지 처리하겠다”며 같은 목소리를 냈다. 드문 풍경이다.

비결은 뭘까. 허태열(한나라당) 특위 위원장은 “행정체제 개편은 이명박 대통령과 정세균 민주당 대표,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 등이 당론 없이 처리하기로 합의한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눈여겨볼 대목은 ‘당론 없이’라는 부분이다.

실제 날 선 당론의 대립 탓에 여야가 드잡이하는 경우는 셀 수가 없다. 4대 강 사업도, 세종시도 당론 전쟁이다. 접점은 넓지 않다. 이런 속에 당론에 깔린, 다른 의견을 가진 소수 구성원들은 냉소하거나 반기를 든다. 민주당의 4대 강 사업 당론과 영산강 치수 사업이 그런 관계다. 세종시는 당론 결정에 따라 한나라당 내 친이명박계·친박근혜계가 대충돌을 일으킬 수도 있는 잠재 변수다. 행정체제 개편에는 이런 당론의 개입과 부작용이 없으니 일이 돼 가고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골격을 잡았다고 행정체제 개편의 앞길이 순탄해 보이지만은 않는다. 잠재된 갈등이 많기 때문이다. 특히 도(道) 문제를 어떻게 푸느냐가 관건이다. 벌써 “시·군 통폐합의 궁극적인 목표가 도 폐지라면 절대 반대한다”(김문수 경기지사), “도의 존폐에는 여야 간에 이견이 있다”(최인기 민주당 의원)는 목소리가 나온다. 앞서 17대 국회에서도 여야는 지방행정체제개편특위를 꾸려 최종 보고서를 채택했지만 대선 같은 정치적 이슈 앞에서 사장됐었다. 입장과 이슈에 의해 밀릴 수 있다는 얘기다.

현행 행정구역은 1894년 갑오개혁 때 만들어졌다. ‘소 달구지를 타고 하루에 갈 수 있는 거리를 기준으로 만든 군(郡)’을 바꿔야 한다는 데 이론은 적다. 첩첩산중의 길이겠지만 “당론 정치나 정파적 이해에서 벗어난다면 기대해 볼 만하다”(동국대 심익섭 교수)는 얘기가 나온다.

권호 정치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