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사 산책] 황제와 권력투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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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앱솔루트 파워(absolute power, 절대권력)’.
성적으로 타락한 미국 대통령을 희화화한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 주연의 영화 제목이 아니다.
프랑스혁명 직전 유럽의 절대군주가 누리던 무소불위의 힘을 일컫는다. 중국의 황제는 세계역사상 대표적인 절대군주였다. 하지만 중국 황제의 권력은 액면 그대로 비교하거나 맞설만한 것이 전혀 없을 정도로 ‘절대(絶對)’적이었을까?

중국의 좡디쿤(莊滌坤)이란 한 블로거는 “황제의 지고무상한 권력은 실제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권(無權)이다. 그는 뭐든지 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성공한’ 황제가 거쳐야만 했던 4단계의 처절한 권력투쟁을 그 근거로 제시한다.

1차 전투는 바로 황자(皇子)들간의 투쟁이다.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형제들간에 서로 죽고 죽이는 싸움을 벌여야한다. 그러나 능동적인 싸움이 아니다. 그는 수족들이 부친과 형제를 죽이더라도 통제할 수 없다. 자신의 명의로 진행되는 모든 싸움은 수족들의 충성 경쟁이기 때문이다. 싸움이 벌어지는 동안 그는 아버지인 황제도 형제도 믿을 수 없다. 그나마 모친이나 부인을 의지할 수밖에 없다. 모계와 처계의 실력이 첫번째 전투 승리의 관건이다.

2차 전투는 모계와 처계가 펼치는 전투다. 야심많은 황제라면 여기에 자신의 적계(嫡系) 무리까지 가담한 3자간의 전쟁이 펼쳐진다. 아무리 강대한 황제도 그들의 모친, 사랑하는 여인, 아끼던 충신, 심지어 자녀까지 멸문지화를 당하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실제로 황제는 누구도 보호할 능력이 없던 것이다.

2차 전투에서 자신의 적계집단이 승리한 황제라도 곧 3차 전투에 돌입해야 한다. 바로 자신의 아부집단과의 전투다. 사람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좌파, 우파, 중간파가 생겨나고 그들간의 투쟁이 있다. 황제란 존재의 필요성은 중재자요 권력의 균형을 맞추는데에 있다. 이 단계에 들어서면 옳고 그름은 중요치 않다. 잘못된 숙청이 시작되면 황제는 타협적이고 우둔하며 제국 발전을 막는 걸림돌로 전락한다. 예로부터 중국인은 환란은 같이 할 수 있지만, 복을 같이 누릴 수 있는 자는 매우 드물다. 반드시 부패하거나 패권을 쫓는다. 황제가 심복들을 장악하면 망당(亡黨)이 되어 자기가 만든 집단을 없애게 된다. 장악에 실패하면 그 결과는 망국(亡國)이다.

3차 관문까지 통과한 권모술수의 대가인 황제는 곧 4차 전투에 맞닥친다. 바로 후궁들 사이의 다툼이다. 다행이 후대가 있는 황제라도 아들들 간에 서로 죽고 죽이는 것을 바라봐야 한다. 그 중 하나가 승리하게 되면 이제 그와 천하를 놓고 겨뤄야한다. 차기 황제의 아부집단은 옛황제의 무리를 반드시 제거한다. 이는 옛황제가 바라는 바이기도 한다. 그동안 자신의 무리들을 다루는 데 지쳤기 때문이리라.

절대권력이 거쳐야할 네 단계의 권력투쟁은 어찌 보면 황제만의 것은 아니다. 모든 지도자들이 직면하는 문제다. 그래서 일까? 젊은 좡디쿤(莊滌坤)은 이렇게 글을 끝맺었다. “소유하는 것은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는 것”이라고.


▲중국의 대표적 절대군주인 청나라 강희제

신경진 신경진 중국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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