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국가의사 결정 메커니즘 실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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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국가의사 결정 메커니즘이 안보인다.

DJ정부가 집권 중기에 접어들고 있다. 이제 초기의 시행착오를 넘어 국정운영에 박차를 가해야 할 시점이다.

하지만 아직 DJ정부는 밀려드는 '국민의 요구' 와 소걸음치는 '국가의 문제해결 능력' 사이에서 국정운영의 방황을 멈추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국정운영의 방황은 우리 사회에 밀어닥친 민주적 열풍 및 DJ정치의 반국가적 정서와 불가분의 관계를 지니고 있는 것 같다.

앞으로 어느 정도의 폭으로, 얼마나 더 지속될지 우리 모두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국가적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물론 40여년 만에 이루어진 정권교체이고 보니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국정운영의 혼란은 어느 정도 피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인지도 모른다.

왜냐 하면 정권교체와 더불어 사회전반에 몰아친 민주적 열풍으로 국정의 운영분담과 보상분담을 요구하는 조직화된 집단들의 정치적 영향력이 거세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보다 중요한 이유는 DJ정부의 시민사회적 혹은 민족적 문제해결 방식이 아닌 제대로 착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가의 의사결정 시스템에 과부하가 걸려 있을 뿐만 아니라 국가의사와 다른 의사들간에 충돌이 빈발해 국정의 방황이 지속되고 있다.

사실 DJ정부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기치아래 정경유착을 근절하고 작으면서도 효율적인 국가를 구축하려 했다. 하지만 역시 국가주도적 경제개혁이 잉태하는 이익정치의 틀을 벗어나기도 어려웠으며 국가의 비대화도 막을 수 없었다.

또 남북관계 개선으로 통일의 지름길을 열어보고자 했지만 역시 국가안보의 중요성에서 파생되는 국민의 압력도 무시할 수 없었다. 생산적 복지를 내걸었지만 국정의 좌충우돌 현상은 심각한 정도다. 결국 국민의 기대수준만 잔뜩 높여놓고 국가의 문제해결 능력은 아직 미지수인 채로 남겨놓고 있을 뿐이다.

DJ정부가 성공을 거두려면 이와 같은 대립축을 결합한 정치이념이나 정책 패키지의 정치시스템을 만들어 국정운영에서 점수를 따야 한다. 국정운영의 성공은 바로 선거 승리의 지름길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정운영의 성공은 선거나 정치로부터 독립된 국가의사 결정 메커니즘의 확고한 정립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집권 2년이 지나도록 정치에 오염되지 않은 국가의사결정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는 것 같지가 않다.

사실 민주화 이후에도 계속된 우리 정치의 가장 큰 비극은 국가 의사결정의 정치화 현상이었다. 국가의 의사가 누구에 의하여, 어디에서, 누구를 위하여 결정되는지가 분명하지 않았다.

언필칭 국가의 이름으로 결정된 정책도 보면 대부분 국가의사의 결정 메커니즘을 제쳐둔 채 최고 통치권자의 사조직이나 친.인척에 의해 결정된 것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아직 DJ정부에서 친.인척의 국정개입 문제가 큰 시비의 대상이 된 적은 없다. 하지만 그래도 보이지 않는 세력에 의한 '무책임의 국가의사결정 메커니즘' 이 어디엔가 작동하고 있지 않나 하는 의심들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아니 실세들 사이에선 이와 같은 시스템의 불가피성을 강변하는 사람들도 없지 않다.

'기득세력' 들의 조직적 저항을 극복한다는 명분아래 보이지 않는 세력에 의한 '음모적' 인 국가의사 결정 체제가 작동되고 있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하지만 DJ정부의 보다 시급한 과제는 이와 같은 국가의사결정 메커니즘의 수수께기를 풀어 국정운영의 방황을 종식하는 일이다. 지금까지 국정 운영의 방황은 북으로부터의 위협이나 좌우 과격세력으로부터의 위협 때문에 발생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국정의 방황은 기득세력의 저항 때문이라기보다 국가 의사결정 메커니즘의 혼란 때문에 파생되는 방황인 것이다.

하루빨리 국민이 싫어해도 나라와 민족에 필요한 것이라면 정치에 구애받지 않고 추진될 수 있는 국가의사 결정의 메커니즘이 작동돼야 한다.

장달중<서울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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