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턱닳는 상도동] 이수성 "도와달라"에 YS 웃기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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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김수한(金守漢)전 국회의장, 이수성(李壽成) 전 총리, 박찬종(朴燦鍾) 전 의원, 박관용(朴寬用).서청원(徐淸源).한이헌(韓利憲)의원, 김용태(金瑢泰).김광일(金光一)전 청와대 비서실장.

23일 하룻동안 김영삼(金泳三.YS)전 대통령의 상도동 자택을 찾은 인사들이다. 전날 신상우.이수성.장기표 3인이 신당 창당을 선언한 후 YS 자택은 몰려드는 인사들로 문턱이 닳을 지경이다.

이들의 목적은 하나. 신당에 대한 YS의 의중을 타진하고 합류 여부에 대한 의견을 구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면담을 마치고 돌아가는 인사들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아무 말씀 없었다" 는 것. YS와 점심을 함께 한 李전총리의 경우 "신당이 잘 되도록 도와달라고 부탁하자 YS는 빙그레 웃기만 했다" 고 했다.

몰려든 인사들로 고무된 때문인지 YS는 이날 李전총리를 만나면서 기자들에게 잠깐 동안 2층 응접실을 개방했다. 그리곤 신당 문제를 제외한 정치 현안에 대해 잠시 속마음을 털어놓기도 했다.

"이번 총선이 DJ에 대한 중간평가라는 주장에 변함이 없느냐" 는 기자들의 질문에 YS는 "여당이 이번 선거에서 참패할 것이고 참패시켜야 한다" 며 "근본적으로 의리가 없고 거짓말 잘하는 사람은 절대 대통령이 돼선 안된다" 고 강조했다.

한때 YS의 이 발언은 신당파들이 신의론으로 이회창 총재를 비판했기 때문에 李총재를 지칭한 게 아니냐는 해석을 낳았지만 박종웅(朴鍾雄)의원은 "DJ를 지칭한 발언" 이라고 유권해석했다.

붐비는 상도동에서 보듯 제4당 출현과 함께 상도동의 움직임은 야권의 판도 변화에 최대 변수로 떠올랐다.

주목할 대목은 상도동을 다녀간 인사들이 YS의 침묵을 전하면서도 하나같이 얼굴이 밝았다는 점이다.

한 인사는 "명시적인 답변을 듣지는 못했지만 나름대로 YS의 의중을 읽었다" 며 "조만간 부산.경남 민주계 인사 상당수가 신당에 합류할 것" 이라고 자신했다.

또다른 인사는 "YS가 신당에 대해 공개적인 의사를 밝히지 않더라도 자신의 뜻을 알리는 데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지 않으냐" 고도 했다. 실제로 YS는 박찬종 전 의원을 만난 자리에서 이런 말을 했다.

"국민의 자유선거를 거쳐 대통령에 당선돼 5년간 재임한 사람으로 내가 다시 대통령을 하겠나, 총재를 하겠나. 오직 이 나라가 잘 되기를 바랄 뿐이다. "

한 측근은 이에 대해 "신당을 일선에서 지지하진 않겠다는 의미" 라며 "대신 YS계 인사들의 움직임을 유심히 보라" 고 귀띔했다.

그렇다면 YS의 뜻은 점점 분명해지고 있는 셈이다. 이미 신상우.김광일.문정수씨 등 PK 민주계 인사들이 신당으로의 이동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박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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