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돈 모자라 속타는 EBS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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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23일 오후 서울 우면동 기슭에 은자(隱者)처럼 자리 잡고 있는 EBS에 모처럼 들뜬 분위기가 감돌았다. 직원들이 스티커 한장씩을 받고 재빨리 자가용 있는 데로 향했다.

"4천억원 수신료는 국민의 세금, 수신료 5분의 1로 교육방송 정상화" . 스티커의 문구에는 직원들의 비장한 각오가 담겨 있었다.

마치 이런 의식이라도 치르면 금방 '꿈' 이 실현될 것 같은 안도감이 역력했다. 라디오 교양팀의 송경화 PD는 "이번에는 죽어라고 싸워서 꼭 목표를 이뤄야 한다" 며 힘주어 스티커를 붙였다.

통합방송법에 따라 이르면 4월 중 공사로 거듭나게 될 EBS.다음달 13일 방송법시행령 발표를 앞두고 방송위원회 등 각 유관단체들이 분주하지만 정작 공사발족이란 역사적 전환점에 선 EBS측은 재원 문제로 전전긍긍이다.

문제의 쟁점은 KBS 수신료. 이달초 발표된 정부의 시행령 안은 KBS수신료의 3%를 EBS의 지원금으로 못박았다. 지난해 수신료 기준으로 1백30억원 정도다.

EBS는 "적어도 공사 원년에는 디지털 방송전환 비용 등 1천6백억원은 필요하다" 며 "교재 판매와 광고료 등 자체수입으로 충당하더라도 8백억원은 부족하다" 고 주장한다. 수신료 1백30억원으로는 턱도 없다는 얘기다.

그래서 최근 EBS노조 등에서 제시한 고육지책이 수신료 인상이다. 현행 2천5백원씩 받는 KBS의 수신료에 교육방송 지원금 명목으로 5백원을 추가해서 받으면 연간 8백억원이 된다는 것. 그러나 수신료 징수 주체인 KBS는 난색을 보이고 있다.

방송위원회도 이 문제에 대해선 아직 묵묵부답. 김정기 위원장도 "방송구조의 전체적인 틀에서 결정할 문제" 라며 유보적인 자세를 보였다.

그러나 EBS의 공사화에 거는 시청자들의 기대는 크다. 지금까지 제도권 교육이 못다한 기능을 알차게 수행했기 때문. TV의 경우 편당 제작비가 고작 2백만~3백만원으로 KBS 등 '공룡' 의 10분의 1도 안되는 열악한 환경에서도 말이다.

미국의 저명한 방송학자 찰스 벤튼은 지난달 한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EBS야말로 한국 공익방송의 표본" 이라고 격찬했다.

정재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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