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봉사 발목잡는 병무행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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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지난 19일 5개월 일정으로 한 민간단체 주관의 인도 빈민 봉사를 떠난 대학생 姜모(20)씨는 하마터면 비행기를 못 탈 뻔했다. 군 미필자라 병무청의 해외여행 허가를 받아야 했는데 그 과정이 너무 힘들었던 때문이다.

지난달 중순 귀국 보증서와 총장 추천서 등을 챙겨 서울지방병무청을 찾은 그는 "2개월 이상의 긴 여행에는 관계 장관의 추천서가 필요하다" 는 뜻밖의 말을 들었다.

"자원 봉사에 무슨 장관 추천서냐" 고 따졌으나 담당 공무원은 '규정' 만을 내세웠다. 이에 姜씨는 교육부.행정자치부에 추천서를 의뢰했으나 모두 "전례가 없다" 며 난색을 표했다.

그는 다시 병무청을 찾아가 "아버지가 현역 대령이고 8월 입대 예정인 징집영장을 받아 반드시 돌아온다" 고 설명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한때 계획 자체를 포기할까도 생각했던 姜씨는 행자부 관계자를 졸라 겨우 장관 추천서를 받을 수 있었다.

10여개 민간단체를 통해 해외봉사를 떠나는 사람은 한해에 5백여명. 최근 각 대학이 방학을 이용한 해외 봉사를 권유하면서 군 미필인 대학생들의 참여가 갈수록 늘고 있다.

하지만 병무청의 까다롭고 경직된 행정이 국위 선양을 위한 해외 자원봉사의 발목을 잡고 있다.

현행 규정상 군 미필자가 해외여행 허가를 받으려면 일정 기준을 갖춘 보증인 2명의 귀국 보증이 있어야 하며, 여행 목적별로 각기 다른 단체장의 추천서도 첨부해야 한다.

그러나 정작 해외봉사에 관한 규정은 없어 병무청측은 해외봉사를 일반여행 기준에 따라 심사하고 있다. 또 여행기간이 2개월이 넘을 경우 '귀국 보장' 을 위해 장관 추천서까지 요구하는 실정이다.

한 민간단체 관계자는 "허가받기가 하도 힘들어 아예 미필자는 뽑지 않으려 한다" 고 불만을 토로했다.

행자부 관계자도 "대학생 개인의 귀국을 장관에게 보장하라고 하는 것은 상식 밖의 행정" 이라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병무청 관계자는 "입대 대상자들의 무분별한 국외 여행과 귀국 거부를 방지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 며 "하지만 민원 소지가 큰 만큼 규정의 개정을 신중히 검토하겠다" 고 말했다.

강갑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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