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그래도 '지역당'은 안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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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한나라당의 공천 후유증이 중진들의 공천 반납.탈당과 신당 창당 움직임으로 이어지고 있다. 본지 여론조사 결과를 보더라도 지난 18일 한나라당 공천자 발표 후 당 지지도가 전국적으로 떨어졌으며, 특히 영남권에서 하락세가 두드러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변화는 기본적으로 한나라당과 이회창(李會昌)총재의 자업자득(自業自得)이라고 본다.

우리는 이미 한나라당의 공천 내용이 구시대 정치인들을 배제하는 등 긍정적 측면에도 불구하고, 그 기준이 불분명한데다 1인체제 구축에 집착해 결과적으로 '회창당(會昌黨)만들기' 가 됐다고 지적한 바 있다.

공천과정도 밀실.정실(情實).하향식이었고 '심야 쿠데타' 식으로 벼락치듯 단행했다는 비판이 많다. '저질' 이라고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정치인들도 충성도의 대가나 중진 배제 차원에서 여러명이 공천을 받았다고 한다.

한나라당 주장대로 이번 총선이 DJ 중간평가에 해당한다면 야권 단합을 통해 현 정권에 비판적이거나 견제할 필요를 느끼는 유권자의 목소리를 한데 모아야 할텐데, 이런 '실물정치' 면에서도 李총재는 유연한 지도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李총재는 벌써부터 총선보다 다음 대선을 의식한다는 일각의 지적을 뼈아프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우리 정당정치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흔히 1인보스 정당과 '지역당' 체질을 꼽는다. 그렇다면 한나라당의 구태(舊態)공천에 반발해 당을 떠나겠다고 나선 이들은 이런 문제의식에도 공감하고 철저한 개선과 개혁을 표방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아직은 그런 다짐이나 선언보다 영남을 중심으로 한 지역정서에 기대려는 듯한 모습이어서 매우 걱정스럽다.

당을 떠나 새로운 노선을 택하고 그것으로 유권자의 심판을 받겠다는 것은 정치인의 자유에 속하지만 행여라도 '영남당(嶺南黨)' 같은 또다른 지역당을 노려서는 곤란하다.

당을 택하고 떠나는 데도 어디까지나 명분과 원칙이 있어야 한다. 지역감정을 볼모로 한 맹주(盟主)의식이나 이른바 '반(反)DJ 모여라' 는 식의 저차원 구호로 세 규합을 꾀해선 정치발전만 요원해질 뿐이다.

뚜렷한 문제의식과 비전, 차별화된 정책을 갖췄다면야 야당이 다섯 개든, 열 개든 나누어진다고 해서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우리는 또한 김영삼(金泳三)전 대통령측 인사들이 지역감정을 부추기려는 듯한 조짐을 보이는 데도 우려를 표하며, 앞으로도 계속 주시할 것이다.

결국 심판은 유권자의 몫이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든 지역감정을 고취하고 그 바람에 편승하려는 DJ 대 반DJ 총선구도나 영남당 출현설 따위의 낡은 정치행태는 이제 끝내야 한다.

우리 정치발전에 아무런 도움이 될 수 없는 지역당 출현에 대한 유권자의 경각심이 그래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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