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 전별금 되살아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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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지난 18일 오후 서울지검 A검사 책상 위에 '축 영전' 이라고 적힌 흰색 봉투가 10여개 놓여 있었다.

16일 봄철 정기인사에서 지방검찰청으로 발령난 그에게 동료 검사들이 작별인사와 함께 건네준 전별금이다. 같은 부에 근무하는 선.후배 검사와 대학 동기생, 사법연수원 동기생이 전해준 것이다.

그는 처음에 받기를 주저했으나 "밥 한끼 같이 못먹고 보내 미안하다" 며 내미는 것을 굳이 거절하는 것도 박절하다 싶어 생각을 바꿨다.

검사들 사이에서 종적을 감췄던 전별금 봉투가 1년여 만에 다시 등장했다. 지난해초 대전 법조비리사건 때 검사들이 변호사로부터 촌지와 전별금을 받은 것이 드러나 징계와 함께 여론의 호된 질타를 받게 되면서 검사들끼리 주고받는 전별금도 자연스레 사라졌다.

당시는 국제통화기금(IMF)체제 상황에서 경제적 부담이 적지 않은 관행을 이 기회에 바꿔보자는 분위기가 대세를 형성했다.

그러나 사정이 달라졌다. 이종기(李宗基.48)변호사가 지난 15일 무죄판결을 받으면서 전별금을 주고받는데 대한 갈등이 줄어들었고 경제도 차츰 회복되면서 검사들도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B검사는 "검사들은 2년여마다 경향(京鄕)교류가 이뤄지기 때문에 서로 주고받다 보면 누가 이익보거나 손해보는 것이 아니다" 며 "계속 이어가야 할 미풍양속이 아니냐" 고 반문했다.

지방으로 가면 집을 구할 때까지 여관 신세를 져야 하고 이사 비용도 만만치 않아 상부상조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일부 검사들은 우려를 표시한다. 성의를 표시해야 할 대상이 한두명이 아니고 월급은 일정해 가정경제에 주름살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동료 검사에게 건네는 전별금은 대개 3만~5만원. 수원.인천 등 서울에서 출.퇴근이 가능한 지역으로 옮겨가면 주지 않는 것이 관례다.

서울지검 구내에 있는 C은행 지점은 18일 오후 전별금으로 사용하기 위해 1만원짜리 새 돈을 구하려는 검찰 직원들의 발길이 줄을 이었으나 신권(新券)이 부족해 애를 먹었다는 후문이다.

김상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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